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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이철희]대통령의 소신과 직분
직무상 본분을 직분이라 한다. 영어로는 듀티(duty)다. 어떤 자리에 있을 경우 그 자리가 요구하는 소임을 말한다. 소신은 굳게 믿거나 생각하는 바를 뜻한다.

그런데 직분과 소신이 충돌할 경우가 가끔 생기곤 한다. 최근 국회가 모법에 어긋나는 시행령의 수정을 권고할 수 있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것이 3권 분립에 위배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주장은 박 대통령의 소신인 듯싶다.

그런데 이런 소신 피력이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직분에 부합하는 것일까. 3권 분립의 틀에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다. 대통령에게 3권 초월의 권한을 일부 부여하긴 하지만 그야말로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한다. 우리 헌법이 정부에게 법안 제출권을 주고 있으나 그 법의 심의와 통과 여부는 전적으로 입법권을 가지는 의회의 권능이다. 대통령이 좌우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분립(separat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소신에 어긋난다고 대통령이 의회의 결정을 윽박지르듯이 누르는 건 잘못이다. 헌법상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본분이 의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자신에게 부여된 거부권(veto)을 행사하면 된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화를 낼 일이 아니다.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 ‘개인’은 감정을 가진 인격적 존재이지만 ‘제도’로 구현되는 대통령은 헌법적 존재다.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분노를 가감 없이 표출하는 태도는 개인의 소신과 제도의 직분을 구분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오만이다.

대통령도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정통성을 갖지만 의회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들도 선출된 국민의 대표다. 때문에 대통령과 의회의 사이는 협력적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다. 이는 대통령제의 숙명이다. 대통령제의 원형국가인 미국에서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통령과 의회가 충돌해 정부가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상황(shutdown)이 간간이 벌어지곤 한다.

현대 국가의 절대적 원칙 중 하나가 법치다. 이 법은 의회가 만든다. 그렇다면 결국 대통령제라고 하더라도 의회의 우선성(supremacy)을 인정하는 3권 분립이 본질이다. 이게 의회민주주의의 참뜻이다. 따라서 대통령은 의회의 결정, 합의 처리한 법안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존중해야 한다. 무책임한 법을 양산한다거나 심지어 의회독재라는 말로 입법부를 공격하는 것은 대통령의 본분을 벗어난 것이다.

사회의 특정한 부분을 대표하는 정당의 공천을 받아 선거에 출마하고, 다수표를 얻어 당선된 대통령이기 때문에 당파성(partisanship)을 갖는 것 당연하다. 그럼에도 우리 헌법에는 대통령에게 ‘국가의 원수’라는 지위를 부여하고 있어 당파성을 초월하는 통합자의 역할도 강제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은 정당 또는 사회 세력이나 계층 간 갈등이 불거질 때 이를 조정하고 중재해야 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소신에 어긋나더라도 통합을 위해 양보하고 참아야 하는 이유다. 성질대로 할 수 없는 게 선출직 공직자의 숙명 아니던가.

본분을 지키는 것은 국회의원들에게도 요구된다. 국회의원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가끔 드는 논리가 있다.

국회의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기관이라는 얘기다. 그처럼 자부심을 갖는다면서 일부 여당의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을 추종하는 행태를 보이는 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대통령에 대한 호오(好惡)를 떠나 국회의원은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독해야 하는 국회의원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된다. 야당의 국회의원들은 막말로 대통령을 조롱하는 것이 마치 야당다운 처신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대통령이 의회를 깔보면 안 되듯이 의회도 대통령을 얕보면 안 된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행정부와 입법부는 서로 존중해야 한다. 양자의 관계를 흔히 견제와 균형(check & balance)이라고 한다. 서로 견제하더라도 큰 틀에서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본분을 지키면 좋겠다. 더불어 본분이 제도적 책무라는 사실도 기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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