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부산)=윤정희 기자] 동일한 원자력발전소를 두고 지역간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이 각기 다르게 설정돼 주민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중심이 된 곳은 부산과 울산의 경계에 위치한 고리원자력본부.
울산시는 고리원자력본부를 중심으로 최대 반경 30km까지 설정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 협의안’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최종 승인됐다고 19일 밝혔다.
‘방사선비상계획구역’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방사성 물질 누출에 대비해 방호약품 준비나 구호소 확보 등 주민보호 대책을 마련해 두는 구역으로서,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대책법’ 개정에 따라 현행 원전 반경 8~10km에서 20~30km 범위로 확대됐다.
울산시는 지난 1월초부터 ‘고리원전의 방사선비상계획구역 설정 협의안’ 마련을 위해 구군, 시의회,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시민 안전성 및 신뢰성 확보를 위해 원전반경 최대 30km로 설정하는 협의안을 지난 4월7일자로 원전사업자에게 통보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현지 확인 등 실효성 검증을 실시하고 지난 14일 최종 승인했다.
하지만 부산의 경우는 달랐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부산시가 설정한 ‘방사선비상계획구역 20~22㎞안’을 사실상 받아 들였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열린 원자력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법적으로 20~30km로 정하게 되어있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의 범위를 사실상 확정했다. 원전이 위치한 주변 지자체들의 요구를 대부분 반영한 것으로 앞서 부산시는 20~22km를 적정 범위로 설정했다. 이같은 설정대로라면 부산지역에서는 기장군 전체와 금정구ㆍ해운대구 일부만 비상계획구역에 속하게 되는 셈이다.
부산시의 이같은 설정은 지역의 현실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실제 부산과 가장 가까운 고리1호기로부터 30km를 직선거리로 측정하면 43만명이 사는 해운대구가 모두 포함되고 수영구와 남구, 동구, 금정구, 동래구, 사상구, 연제구, 부산진구까지 포함되어 현실적으로 부산시민 전체를 대피시킬 구호소와 방호약품을 구비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이유다.
이처럼 부산시의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 법적 최소치인 20~22km 수준으로 정해지자 부산지역 야권과 시민단체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부산시당은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가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을 30km 내외로 설정하고 있으나 부산시만 유일하게 21km로 설정했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부산의 현실을 외면한 것이다”며 “부산은 고리원전 1호기를 비롯한 노후원전 문제와 세계최대의 원전 밀집 단지로, 원전으로 인한 위험이 전국 어느 도시 보다 높은 지역이지만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의 범위는 제일 작게 설정됐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주장했다.
부산지역 60여개 시민단체가 모인 반핵부산시민대책위는 “부산시가 시민 안전보다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 확대에 따른 인력과 비용만을 따지는 행정편의주의적인 시각에서 설정한 비상계획구역을 원안위가 검증없이 받아들였다”면서 “수백만명의 인구가 사는 부산의 안전을 도외시한 방사능비상계획구역 결정을 재설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