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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남녀] 여자가 외도할 때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불륜영화’의 대명사격인 영화 ‘실락원’은 도쿄 전철역에서 시작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한발짝 사이를 두고 아쉬운듯 서 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가 살짝 몸을 기대며 남자의 쟈켓 단추 하나를 채워줍니다. 남자와 여자는 바라보며 싱긋 웃죠. 남자가 “바래다 줄까”고 묻자 여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전철이 들어오고 여자는 올라탑니다. 바짝 문에 기댄 여자와 기차 방향으로 몇 걸음 따라가는 남자가 상대의 눈을 놓칠랴 바라보며 손을 흔듭니다. 그리고 혼자 남은 남자는 여자가 채워준 단추를 풀었다가 다시 채우며 슬몃 입가에 미소를 짓죠.

출판사에서 국장까지 지내고 한직인 자료실로 좌천된 50대의 구키와 권위주의적이고 독선적인 의사 남편과 사는 ‘해서체 같은 여자’ 린코는 그렇게 흔들리며 사랑을 시작합니다. 


여자는 다정다감하고 세심한 남자에게 끌립니다. 여자의 의견 같은 건 무자르듯 무시해버리는 남편에게서 느낄 수 없는 부드러움을 느끼며 린코는 뜨거워집니다. 둘은 만나는 횟수가 많아지고 여행도 함께 하며 점차 깊어지죠. 충격적인 동반자살로 끝을 맺는 둘의 사랑은 그야말로 소설같은 얘깁니다. 실락원의 남자와 여자는 각자 놓인 처지가 불안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에도 여자는 외도를 꿈꿀까요?

국내에는 최근 처음 소개된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 ‘사랑의 완성’은 남자에 대한 여자의 본능적 욕망과 심리의 변화를 현미경을 들이댄듯 그려냅니다.

“정말 함께 갈 수 없어요?”

“안되겠소, 당신도 알다시피 급히 끝내야 할 일이 있소.”

“하지만 릴리가 많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저녁 무렵 부부가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딸의 학교에 가는 일을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못간다는 말에 별로 갈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차를 따르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의 시선은 사랑과 신뢰로 고요하고 단단합니다. ‘명치 끝이 뻐근해오는 행복’이라고 작가는 표현합니다. 아내의 시선을 받아 남편도 눈길을 마주합니다. 부부는 서로를 응시하며 눈길로 서로를 붙들고 넋나간 듯한 미소만 짓죠.

그때 아내가 놀랄만한 고백을 합니다.

“며칠 전 저녁 내게 키스했을 때를 기억해요? 그 때 우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나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떠올랐지요. 차마 당신에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순간 겸연쩍게 웃으며 위기를 넘길 수 밖에 었었지요. 당신과 멀리 떨어져, 당신없이 혼자 지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희미한 그림자처럼 찾아왔어요.당신 마음을 사로잡아 내 마음에 넣었으면 하다가.... 다시 당신을 내쫒아버리고 나를 땅바닥으로 내팽개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린가 싶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둘의 존재만으로 꽉 찰 때, 한 쪽에선 불안이 스멀거릴 수 있으니까요. 남자는 담뱃불을 끈 뒤 덧문을 높이 열고 거리를 내다봅니다. 아내도 함께 같은 곳을 봅니다.

다음날 클라우디네는 열세살 딸 릴리의 학교가 있는 소도시로 떠납니다.

기차가 교외로 빠져나가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예민하게 감지해나갑니다. “그것은 입원실에 익숙해진 환자가 완쾌되어 병실 밖으로 자유의 첫 걸음을 내디딜 때와 같은 심정으로, 이제까지 거의 고통에 가깝게 억압받았던 행복감이었다.”

감각이 활짝 열려 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가 그녀의 눈에 다르게 포착됩니다.

그녀는 이 욕망이 불현듯 생겨난게 아니라 잠재됐던 것으로 인식합니다. 무언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속에서 그녀는 해방감을 만끽하며 혼자 마음속 낯선 여행을 즐깁니다. 남편 생각을 떠올리지만 이미 생각의 문은 닫힌 상태입니다.

기차여행이 다 끝나갈 무렵, 한 남자가 다가오죠. 그는 바깥경치를 보며 말합니다.

“낙원이군요, 매혹적인 섬 같아요. 동화의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하얀속옷에 레이스 달린 치마를 입은 것 같네요.”

클라우디네는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시선과 마음은 이미 남자를 쫒고 있습니다.

기차에서 썰매로 갈아타면서 ‘바로 그 남자’와 동승하게 된 클라우디네는 남자의 얼굴과 표정을 몰래 훔쳐보며 남자에게 좀더 상냥해야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합니다. 그런 생각에 쾌감을 느끼는가하면 형편없는 자신에게 모욕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모순된 심리는 내내 이어집니다. 호텔방에 머무르며 클라우디네는 남자가 다가와주길 바라다가 생면부지의 남자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극단을 오가는 생각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로 거의 녹초가 됩니다. 방문 앞에서 멈추는 발자국 소리에 촉각이 곤두서고, ‘남자가 원했던 일을 하고자 한다면...’하는 생각에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달아오릅니다. 그녀는 남자가 문 앞에 귀를 기울이고 서 있다는 사실을 알고 거의 문고리 앞에까지 다가갑니다.

그런 여자의 마음을 남자는 이미 읽었을 겁니다. 남자는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냅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클라우디네는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그런데 ‘소녀같은 짓’을 한다는 생각에 묘한 흥분마저 느낍니다. 낯선 여행지는 그녀의 욕망과야성을 흔들어깨워 스스로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혼란스럽게 만듭니다.심지어 그녀는 딸의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화사해집니다.

이쯤 되면 남자의 구애는 클라우디네가 스스로를 여는 핑계일 뿐입니다. 방에 마주앉은 남자와 여자는 옷을 벗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관문이죠. 욕망의 문이 열리는가 싶은 순간, 클라우디네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허공에 말을 뱉어냅니다. “짐승들만 다니는 좁은 길로 들어갈 때와 같은 기분이에요. 동물, 사람, 꽃 할 것 없이 모두 변해요. 우리 자신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하죠. 우리가 넘어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선이 단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나요?”

클라우디네는 거기서 멈춥니다. 말이 이성을 불러들인거죠. 사랑의 사이클이 보였달까요. 결국 시들어가게 마련이란 생각이 든 겁니다. 클라우디네의 욕망의 불은 그렇게 사그러듭니다.

대신 어떤 쾌감이 클라우디에게 차오르죠. 자신은 사랑하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속한다는 감정입니다. 뭔가가 일어나길 기대했던 독자라면 다소 아쉬울 수 있는 결말입니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클라우디네의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사랑은 더 공고해졌을까요? 사랑의 완성은 그녀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처럼 보입니다.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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