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유명 디자이너들은 물론 국내 대기업 브랜드들도, 브랜드 철학과 ‘헤리티지’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미술관 전시를 택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이 5월 1일부터 17일까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엽니다. 타이틀은 ‘루이비통 시리즈 2 - 과거, 현재, 미래’.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
2013년 여성복 아티스틱 디렉터로 합류한 스타 디자이너 니콜라 제스키에르(Nicolas Ghesquiere)가 진행한 세번째 컬렉션을 중심으로, 160여년 루이비통 하우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발견하는 전시,를 표방했습니다.
광화문 D타워에 마련된 전시장을 미리 둘러본 소감은 ‘대략난감’했습니다. 미디어아트와 포토월을 매체로 꾸며진 전시장 전체 분위기는 한마디로 테마파크 같았습니다. 왜일까요. 지금부터 전시장을 들어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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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트렁크, 장인정신, 액세서리갤러리, 백스테이지, 끝없이 이어지는 쇼, 포스터룸, 스티커월 등 총 9개 테마로 구분해 놓았네요.
전시장은 액세서리갤러리 등을 제외하곤 온통 까만색 가벽과 거울이 설치돼 있습니다. 입구부터가 어두컴컴해서 마치 심봉사가 지팡이로 돌 두드리며 가듯,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딪히니 조심, 조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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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입구 ‘매직트렁크 갤러리’에서 루이비통의 상징물인 트렁크를 소재로 한 비디오아트가 상영되고 있네요. 검은색 화면에 트렁크 모양을 메인으로 홀로그램 영상이 비춰집니다. 트렁크 안에서 루이비통 가방이 튀어나오기도 하네요. ‘끝’.
아 이건 또 뭐죠. 입구를 지나 ‘장인정신’ 섹션에 오니, 두 분의 여성 장인이 루이비통 가방을 만들고 계십니다. 전시장에 사람을 세워 놓고 구경거리를 만들었네요. 장인의 자부심을 이렇게 다뤄도 되는 건가요. 퍼포먼스라고 치기에는, 보는 이가 면목 없습니다.
내내 깜깜한 전시장에 갇혀 있다 갑자기 ‘수술실’처럼 밝은 공간에 들어갑니다. ‘액세서리 갤러리’네요. 1923년에 제작된 마담 르포리(Lepori)의 모자 트렁크가 있습니다. 당시 유행했던 아르데코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디자인이랍니다. 몇 점의 앤티크 트렁크를 빼면 대부분이 2015년 봄ㆍ여름 컬렉션 상품입니다. 루이비통의 과거, 현재, (혹은 미래까지의) ‘작품’들을 조금 더 볼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다시 깜깜한 공간으로 들어왔습니요. 이번에는 사방이 거울이라 더 ‘멘붕’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쇼’ 섹션은 곳곳에 거울을 배치해놓고 360도 프로젝션을 쏩니다. 2015 SS 컬렉션 런웨이가 몽환적인 화면으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쇼 영상이 너무 빠르게 진행돼서 눈이 휘둥그레해지네요. 어느 트릭아이 전시관의 다크룸에 들어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곳이야말로, 궁극의 테마파크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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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 섹션에서 한숨 돌려봅니다. 프랑스 사진작가 장 폴 구드가 찍은 루이비통쇼 백스테이지를 프레스코 스타일로 벽면을 장식해 놓았네요. 와이드하게 펼쳐놓은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그런데 그게 다입니다.
‘포스터룸’에는 그나마 조금 더 많은 사진들이 붙어 있습니다. 애니 레보비츠, 유르겐 텔러, 브루스 웨버가 촬영한 이번 시즌 ‘시리즈 2’ 광고 캠페인 사진들입니다. 그런데 사진들을 너무 복잡하게 다닥다닥 붙여놔서 뭐가 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잡지 사진 오려서 벽지를 발라놓은 느낌이랄까요. 유명 작가들의 사진들이 제 값을 못합니다. 미술관은 아니지만 엄연히 전시인데, 관람객의 시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전시를 다 둘러보고 나오니 ‘스티커월’이 있습니다. 루이비통이 이번 시즌 선보인 프린트를 기반으로, 13개 팝아트 스타일 스티커를 반복적으로 채워놨네요.
마음에 드는 스티커 몇개를 가져가도 좋다며 권합니다. 아, 이건가요. 당신이 욕망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이 작은 스티커들 뿐임을 알려주고 싶었던가요….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들의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지요.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전시 또한 지금의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영화를 복기하기에 ‘영혼’이 없는 전시입니다. 그나마 무료라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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