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금융이 금융시장의 연속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정부가 앞장서 밀었던 관계형금융과 통일금융이 ‘쑥’ 들어간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과거 MB정부 당시 간판 금융상품이었던 ‘녹색금융’이 새 정부 들어 천덕꾸러리고 변한 것과 마찬가지다. 금융상품은 시장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전략, 장기적인 안목으로 운용돼야하지만 수장에 따라, 그리고 정부 정책에 따라 금융상품의 명운도 엇갈리는 후진적인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희미해진 관계형금융ㆍ통일금융, 녹색금융 닮았네=관계형금융과 통일금융이 수장교체와 함께 찬밥 신세로 전락하면서 과거정권교체와 함께 사라진 녹색금융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수장 교체와 함께 하루아침에 핵심사업에서 구석자리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금융기관들 역시 새 수장의 의중에 맞춘 사업에만 골몰하는 모양새다. 금융기관들이 관계형금융, 통일금융과 달리 기술금융과 핀테크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기준 신한ㆍ우리ㆍ하나ㆍ기업 등 4대 은행의 4개월간 관계형금융 누적실적은 2231억원(589건)에 불과하다. 기술금융이 지난해 7월 추진된 후 4개월 간 4대 은행에서 4조9772억원(8729건)을 유치한 것에 비교하면 큰 차이다.
관계형금융은 금융기관에게 기존의 서류와 담보ㆍ보증으로만 기업을 판단하지 말고 꾸준한 관계를 맺으며 자금을 지원하라는 취지로 지난해 11월 말부터 본격화됐다. 금융기관이 대출 뿐만 아니라 지분투자까지 할 수 있도록 한 파격적인 내용이 담겼다. 최수현 전 금융감독원장의 대표 사업으로, 최 원장이 물러난 이후 추진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기술금융은 전임 신제윤 금융위원장 시절 시작했지만 현 임종룡 금융위원장도 강조하면서 실적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담당자는 “은행의 일선 영업현장에서 관계형 금융을 심사해 달라고 신청하는 사례 자체가 그리 많지 않다”며 “최 원장이 퇴임한 후 힘이 빠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지원대상이 될 수 있는 중소기업이 제한적이고 제도가 정착하려면 출자전환 문제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출자를 하려면 은행 입장에서는 투자회수가 담보돼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거나 다른 기업과 합병하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 “결국 기상장된 기업으로 대상이 제한되는데 이들 기업은 은행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통일금융 처지도 관계형금융과 다르지 않다. 불과 1년 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 이후 관련 상품이 쏟아지는 등 반짝 활기를 보이다 최근엔 시들해진 모습이 역력하다. 전체 18개 은행 가운데 통일관련 상품을 출시한 곳은 4곳에 불과하다. 반짝 특수로 은행들마다 통일준비위원회 등을 발족했지만 뚜렷한 방향성을 잡진 못하고 있다. 은행권을 제외하면 카드 등 다른 업권의 통일금융 상품은 전무한 실정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통일이란 자체가 워낙 개념이 모호하고 커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방향을 못잡고 있다”면서 “정부가 명확한 통일금융 청사진을 내놓고 있지 않아 세부안을 세울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정부의 통일 이후 경제제도 통합 관련 부처 합동 테스크포스(TF) 회의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정권따라 바뀌는 금융판도… 기술금융도? =최근 기술금융이 금융권의 최고 화두로 떠올랐지만 업계에서는 기술금융도 정권이 바뀌면 유야무야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상존한다.
A은행 고위 관계자는 “실적을 평가하기 때문에 열심히 해야 하지만 향후 정권이 바뀌고 난 뒤 흐지부지 되면 뒷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매 정권마다 추진됐던 금융정책은 정권이 바뀐 다음 슬그머니 막을 내렸고 그에 따라 명멸하는 금융상품이 속출하면서 임기응변에 그쳤다. 이명박정부가 추진했던 녹색금융이 대표적인 예다. 2009년부터 시작된 녹색산업 금융지원은 2012년 정점을 찍고 난 후 2013년부터 하락세를 보이다 현재는 금융 시장에서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대부분의 은행에서 판매를 중단ㆍ통합했고 녹색금융협의회도 개점휴업상태다.
앞서 김대중 정부 때의 IT 벤처 육성책,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 등 5년 정권을 주기로 금융정책과 관련 상품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일이 계속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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