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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민영화 공기업의 原罪
권력을 잡으면 함께 따라오는 게 ‘자리’다.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고, 정확히 계량할 수는 없지만 그 수가 3000개는 너끈할 것이라고 한다. 도하 각 정치세력이 죽기 살기로 정권을 잡으려 달려드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자리 때문이다. 자리가 권력의 목적지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성장한 포스코의 회장 자리는 그 가운데서도 노른자위에 속한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권력이 들어설 때 마다 포스코는 한바탕 몸살을 앓는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당시 정준양 회장은 퇴진 압박에 시달리다 자리를 내놓았다. 이쯤에서 그쳤으면 정 전 회장도 아쉬움은 있겠지만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 자신도 이전 정권의 엄호 속에 회장 자리에 올랐던 만큼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사건을 수사중인 검찰의 칼 끝은 여지없이 정 전 회장을 향하고 있다. 머잖아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검찰청사로 들어서는 낯익은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앞서 황경로-유상부-이구택 전 회장이 기소되거나 수사 선상에 오르내렸던 것처럼 ….

포스코 홈페이지와 정관을 들여다보면 이 회사의 지배구조는 완벽에 가깝다. 회사 소개란 지배구조 항목 첫 머리에는 ‘이사회와 전문 경영진 간의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선진형 지배구조’라고 못박고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 항목에선 사외이사가 의장을 맡는 이사회는 절대 독립성을 보장 받으며, 회장은 ‘CEO후보추천위원회’가 구성돼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임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가졌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선임된 CEO가 왜 쫓겨나다시피 물러나고, 사정의 칼날 세례까지 받아야 하는걸까. 바로 권력의 탐욕과 몰염치 때문이며 이게 포스코 CEO 수난의 역사가 오늘도 계속되는 이유다. 권력이 아무리 힘이 세더라도 넘볼 수 없는 자리가 있다. 민간 영역이 그렇다. 포스코는 과거 공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정부 지분이 한 푼도 없는 민간기업이다. 그런데도 회장 자리는 당연히 권력의 몫으로 여기니 ‘정권의 탐욕’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하긴 공기업 원죄(原罪)의 업보는 포스코만 지고 있는 게 아니다. 이석채 전 KT 회장은 정권이 바뀌면서 논란 끝에 중도 사퇴했다. 그것으로 끝났으면 좋으련만 그 역시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남중수 전임 회장이 그 5년 전 찍어내듯 밀려난 것처럼…. 역대 KB금융 수장들이 ‘관치 수난’을 겪다 만신창이가 돼 밀려나간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정말 문제는 자리 다툼이 경쟁력을 갉아먹는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신용등급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으며, KB금융은 이제 리딩 뱅크라는 소리가 무색할 지경이 됐다. 철강경기의 침체와 금융 위기 등 외부 여건도 좋지 않았지만 CEO리스크 폐해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민영화된 공기업의 지긋지긋한 수난사는 이제 끝내야 한다. 권력이 탐욕을 버리면 간단한 일이지만 그게 도저히 안되는 모양이다. 다음 대선에서 이를 공약하는 후보가 있다면 한표 던질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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