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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좁은통로엔 스티로폼 가득…담배꽁초에도 화재 무방비
우리 주변의 '세월호' <1> 재래시장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명백한‘ 인재’였다. 바다에 빠진 생명을 구해야 할 구명보트는 노후해 무용지물이었고, 승무원의 대기 지시에 어린 학생들은 영문도 모른채 배 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구조를 기다리며, 피지도 못한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갔다. 그렇게 우리는 304 명의 생명을 허망하게 떠나보냈다. 헤럴드경제는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제2의 세월호’를 막기 위해 주변에서 뜻밖의 대형참사를 야기할 수 있는‘ 일상의 세월호’를 찾아 연재한다.

좁은 통로와 가연성 물질이 산재해 있는 재래시장이 화재발생시 큰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재래시장에서 가스통들이 안전시설 없이 골목길에 놓여져 있고(사진 위) 소화기 주변에 가연성물질인 비닐과 전선등이 산재해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두달전 화재겪은 도곡시장
“소화기·대피소? 그런거 몰라요”…소방도로 통로는 점령당한지 오래
가락시장엔 엉키고 널브러진 전선들…자동소화장치 설치율은 고작 9%


양팔 너비밖에 되지 않는 좁은 시장 통로에 상인들이 내놓은 각종 상자와 스티로폼 자재들이 쌓여있다.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면 LPG 가스통에서 이어진 가스 배관이 전선과 함께 얽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담배꽁초만 떨어뜨려도 화마가 집어삼킬 것 같은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시장 상인들은 오히려 “불 나면 길바닥으로 나가면 되지 비상 대피소는 무슨….”이라며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두 달 전 화마 휩쓴 도곡시장…“소화기ㆍ비상대피소 위치, 바빠서 몰라요”= 지난 18일 헤럴드경제가 찾은 서울 곳곳의 재래시장은 그야말로 화재에 ‘무방비’ 상태였다. 불에 쉽게 타는 각종 물건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고, 화재시 소방차가 들어서야 하는 소방도로 연결 통로는 이미 인근 상점의 영업용 테이블이 점령한 상태였다.

특히 두 달 전 화마가 휩쓸고 간 도곡시장은 상황이 심각했다. 본지 기자가 도곡시장에서 무작위로 10 명의 상인들에게 소화설비 및 경보설비의 위치에 대해 물어본 결과 ‘소화기의 위치와 사용법’을 안다고 대답한 상인은 단 두 명에 불과했다.

화재가 나면 이를 알려줄 ‘경보설비’나 화재 이후 급히 대피할 ‘피난설비’의 위치를 안다고 대답한 상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화재가 발생했던 동일 상가의 상인들 조차 여전히 소화기, 경보기를 배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인근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성모(54) 씨는 “이 건물은 지은지 오래돼서 요즘 처럼 소방 설비나 이런걸 엄격하게 갖추기 어려워요, 소방서에서 가끔 와서 교육 하려고 하긴 하는데 우리 바빠서 어디 뭐 가고 모이기 쉽지 않죠”라고 말했다.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공영시장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2013년 큰 화재를 겪은 가락시장의 경우 시장 통로 곳곳에는 여전히 가연성 물질이 성인 남성의 키만큼 쌓여있었고, 엉킨 전선이 이곳저곳 널려 있었다. 한 청과도매상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문모(29) 씨는 “종이상자나 스티로폼 등을 가게 주변에 쌓아두지 말라고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딱히 둘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소화기 설치한 시장상인 전체 34% 불과…작동되는 피난설비는 거의 없어= 화재에 대한 안전불감증은 서울 뿐 아니라 전국 전통시장에서 동일하게 나타난다.

본지가 18일 정수성 새누리당 의원실을 통해 단독입수한 ‘2014 전통시장 화재안전진단 종합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전통시장의 3만8656 개 점포 중 소화기를 설치한 곳은 34.9%인 1만3508 개에 불과했다. 자동식 소화설비인 ‘자동확산소화장치’는 설치대상 7824 개 중 9%인 708 개만 설치돼 있었다. 스프링클러설비는 전체 설치대상 3380개 업체 중 95.4%인 3224개가 설치해 비교적 양호했지만, 전체 점포가 설치대상이 아닌만큼 화재 초기에 ‘골든타임’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열이나 연기, 불꽃 등을 감지해 자동 또는 수동으로 경보를 내는 경보설비 설치율 역시 저조했다. 화재의 초기소화와 조기피난을 가능케하는 경보설비는 400㎡이상의 모든 건축물에 설치돼야 한다. 경보설비 중 화재를 자동으로 감지하는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설치한 점포는 전체 중 5.5%인 2141 개에 불과했다.

비상조명등처럼 화재가 발생했을 때 신속히 피난할 수 있도록 돕는 피난설비를 설치한 점포는 전체 3만8656개 업체 중 1022 개로, 이 중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설비는 833개 뿐이었다.

특히 노점형 시장의 경우 피난설비의 설치가 전무해 피난 경로가 복잡한 일부 노점시장의 경우 피난설비 미비로 인한 화재발생시 인명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반복된 화재에도 꺼진불만 끄기 급급…전통시장 화재는 ‘진행 중’= 지난 2005년 12월 서울 동문시장 신발도매상가에서 발생한 화재 당시 미로와 같은 통로와 베란다가 없는 주상복합건물 구조 때문에 대피가 어려웠다. 대피 통로도 없이 신발 등 고무류에서 발생하는 유독가스로 인해 1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때문에 현장에서는 소방시설 설치를 확대해 갑작스런 화재에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사 및 분석을 진행한 한국소방안전협회는 “대부분의 전통시장의 경우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길이 빠르게 연소ㆍ확대될 수 있고 소방시설의 설치관리가 곤란하며 낡은 전기 가스시설과 조리난방용 기구 등이 있어서 화재위험요인이 항상 상존한다”며 “전통시장 소방분야 안전관리 개선 대책 수립을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서지혜ㆍ김진원 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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