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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분향소 설치 시도”→“설치 장소에 있었다” 말 바꾼 경찰
[헤럴드경제=이지웅 기자] 김기종(55)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수사 중인 경찰의 말바꾸기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경찰이 사건 초기 국보법 수사 착수를 선언하면서 “김 씨가 김정일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고 발표했다가 13일 열린 중간 수사결과 발표자리에서는 “분향소 설치 시도는 확인되지 않았고 분향소 설치 장소에 김 씨가 있었다”로 묘하게 말을 비튼 것이다.

지난 6일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을 수사하던 수사본부는 언론 브리핑을 갖고, 김 씨가 2011년 12월 26일 서울 중구 대한문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분향소를 설치한 혐의로 조사받은 이력이 있다고 발표했다.

수사본부는 8일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도 “김 씨가 2011년 서울 대한문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고 거듭 밝혔다.


당시는 경찰이 김 씨 수사를 진행하면서 국보법 위반 혐의도 수사하겠다고 밝혀 무리한 수사가 아니냐는 논란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점이다.

또 수사 초기부터 언론 브리핑을 통해 국보법, 북한과의 연계성 등을 강조하는 의도가 무엇이냐는 지적이 제기된 시점이기도 하다.

경찰은 그러나 13일 중간 수사결과 발표자리에서는 분향소 설치와 관련해 ‘김 씨가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는 기존의 발표에서 ‘설치를 시도하는 장소에 김 씨도 있었다’는 내용으로 미묘하게 말을 바꿨다.

이날 김두연 서울지방경찰청 보안2과장은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김 씨가 분향소를 설치하기 위해 거기 모인 회원들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분향소 설치 시도가 맞느냐고 기자들이 재차 묻자 “당시 사진과 동영상, 집회에 참가했던 단체 관계자들에게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김 씨가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고 발표했던 지난 6일과 8일 당시에도, 설치 시도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며, 분향소 설치를 시도하는 그 장소에 김 씨가 있었다는 정도만 확인이 됐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경찰의 해명에 따르자면 ‘김 씨가 분향소 설치를 시도했다’는 경찰의 기존 발표는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설치 장소에 있었다면 설치 시도에도 참여했을 것이라는 설익은 추정을 사실처럼 발표했거나, 아니면 일부러 김 씨의 행적을 부풀렸다는 것 이외 다른 가능성을 선뜻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백주대낮에 주한 미국 대사가 괴한에 공격당한 엄중한 사안의 수사 브리핑 자리에서, 1차례도 아니고 2차례에 걸쳐 잘못된 내용을 거듭 발표했다는 점에서, 단순 실수로 보아넘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찰은 분향소 설치 부분에 대한 경찰 발표가 달라졌다는 지적에 대해 “(기존 발표는) 언론 보도와 자료 등의 분석을 통해 분향소 설치 시도 현장에 김 씨가 있었고, 이를 보안 수사 착수 배경의 하나로 언급했던 것”이라고 답했다.

질문을 빗겨가는 전형적인 동문서답이다.

말바꾸기 논란에 대해 경찰은 경찰과 언론 간의 ‘커뮤니케이션 오해’ 정도로 정리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공교로운 사실은, 그런 방식으로 ‘우연하게’ 발생한 ‘오해’가 경찰의 국보법 수사에 대한 비판 여론을 어느정도 무마시켜주는 한편, 여러모로 국보법 수사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동력으로 요긴하게 활용됐다는 점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경찰도 이를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plat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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