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풀기 공세로 통화가치 하락
한국 수출감소·생산위축 직격탄
물가도 41년만에 日보다 아래로
원화값·환율 심각하게 고민할 때
한국이 거세게 몰아치는 ‘글로벌 통화(환율)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들이 금리를 낮추거나 통화를 푸는 방식으로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절하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이 감소하고 생산이 위축되는 등 직접적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지난해 한국의 물가상승률이 1973년 이후 41년만에 처음으로 일본을 밑돌면서 디플레이션 공포가 심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글로벌 환율전쟁을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요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으나 그 여파가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며 원화가치의 상승을 막고 환율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3면
이른바 ‘불황수출’ 전략이라는 통화전쟁에 뛰어든 나라는 일본과 EU, 캐나다 등 선진국은 물론 터키, 인도, 중국 등 신흥국을 포함해 20개국이 넘는다. EU는 이달부터 1조1400억유로의 양적완화를 실행할 계획으로, 새로운 통화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교역량 등을 감안한 원화의 실질실효환율(61개국 비교)은 올 1월 115.73으로 2012년 이후 20% 이상 절상되면서 7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효환율이 100을 넘으면 기준연도(2010년)에 비해 통화가 고평가됐음을, 100을 밑돌면 저평가됐음을 의미한다. 원화의 실효환율은 지난 2012년 1월 94.74에서 단계적으로 상승해 원화가 지속 절상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일본 엔화의 실효환율은 2012년 1월 111.48에서 올 1월 76.66으로 31.2% 절하됐고, 유로화는 최근 1년 사이 6.4% 절하됐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주요 27개국의 실효환율을 집계한 결과에서는 한국과 미국, 영국 등 7개국만이 100을 웃돌았다. 특히 100을 밑돈 20개국 대부분의 실효환율이 작년 상반기 100을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부터 환율전쟁이 격화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원화가치 상승은 이미 수출에 이상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월 수출은 455억2000만달러로 작년 1월에 비해 10%가 급감했다. 통관 기준 2월 수출도 414억5600만달러로 3.4% 줄어 연초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출규모가 지난해 12월 연말 밀어내기 효과 등으로 1.3% 증가한 것을 제외하면 지난해 10월 이후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유가하락으로 관련 제품의 단가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화가치 상승으로 수출이 영향을 받고 있다”며 “환율이 실물경제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일정 시차가 있다는 ‘J-커브 효과’를 감안할 때 글로벌 환율전쟁이 수출과 생산 등 경제에 점차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수출 감소는 대외의존도가 큰 한국경제에 타격을 주어 올 1월 산업생산이 3.1% 감소했고 소비와 설비투자도 동반 감소했다.
이해준ㆍ배문숙ㆍ원승일 기자/hj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