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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정재욱]기업이 戰士로 나설 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기업인들과 함께 한 오찬은 눈여겨 볼 대목이 많다. 표면적 취지는 문화 예술 분야와 평창동계올림에 대한 기업의 지원을 당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속내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경제살리기에 동참해 달라는 러브콜이다.

우선 참석자들의 면면만 봐도 ‘문화예술 지원 당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물론 이해진 네이버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의장 등 최근 떠오르는 신진들의 얼굴도 보였다. 사실상 3세 경영 체제에 들어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이재용ㆍ정의선 부회장의 첫 청와대 행사 참석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꼭 와야 할 재계 인사는 거의 다 왔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꼭 2년이 되는 날을 택해 기업인들에게 점심을 대접한 것도 예사로 볼 건 아니다.

요즘 박 대통령의 마음은 무척 무겁고 바쁘다. 조급증 환자를 보는 듯하다. 그럴만도 하다. 5년 단임제의 현행 헌법 구조상 지금은 권력의 힘이 절정에 이르는 시점이다. 가장 자신있게 국가경영에 나서고 정권차원의 간판이 될만한 성과를 거둬야 할 때다. 그런데 그 기세가 너무 약해 보인다. 뭔가 위축되고, 나사 한 두 개가 빠진듯한 느낌이다. 갈 길은 먼데 행렬은 지체되는 형국이다. 3년차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뒤에는 더 어려워진다는 걸, 어쩌면 아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걸 누구보다 박 대통령은 잘 알고 있다. 어찌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퉁퉁 불어터진 국수’ 발언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부동산 3법 등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이 늑장 처리되는 바람에 경제회복의 타이밍이 늦어지는 아쉬움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다. 한시가 급한 데 법안들은 국회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니 정치권에 대고 볼멘소리를 할만도 하다.

하지만 더딘 경제 회복이 정치권 때문만은 아니다. 설령 부동산 3법이 제 때 통과됐다 하더라도 경기를 활활 타오르게 할 본질적인 수단은 못된다. 마음같아선 재정으로라도 군불을 때고 싶지만 곳간 사정이 여의치않다. 이런 난국을 타개하는 데는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박 대통령이 문화융성과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는 행간에는 이런 의미가 숨어 있었다. 물론 참석자들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의 요청이 아니더라도 재계가 선제적이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때가 됐다. 재계 입장에선 박근혜정부의 대(對) 기업 정책에 못마땅한 게 많을 것이다. 실제 일감몰아주기 규제, 신규 순환출자 금지, 대형마트 영업 제한, 기업 유보금 과세… 등 기업 경영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책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팔짱만 끼고 때만 기다리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지금 안팎의 경제상황은 전시나 다름없다. 총과 칼이 필요한 전쟁에는 군인이 나서듯, 경제 전쟁에선 기업이 전사(戰士)가 돼야 한다. 그게 기업가 정신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양지바른 곳만 찾아 기업을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대기업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국민들 희생과 국가적 지원이 큰 밑거름이 됐다. 국가와 국민에게 그 만큼 빚을 진 셈이다. 지금이 그 빚을 갚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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