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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스노선도 전부 OO동”…XX로는 경찰도 헷갈려
도로명주소 본격시행 1年…외국인 관광객 동행 르포
새 주소 표기 제도인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된지 1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지번주소가 더 익숙해 우리 국민들도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외국인들에겐 더 큰 혼선을 주고 있다. 관광객 등 외국인들의 길찾기 편의성을 도모한다는 도로명주소의 취지에도 역행하고 있단 지적이다.

실제로 기자가 미국에서 온 에릭 갬브릴(36)의 길찾기 걸음에 동행해봤다.

사우스다코타주(州)에서 제법 큰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다 한국에 여행 온 에릭은 “다른 건 몰라도 길 찾는 데는 자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경찰서 앞에서 만난 에릭은 이태원 경리단길 회나무로(路)에 있는 한국식 스테이크집을 찾아가보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온 에릭 갬브릴(36)이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노선도를 확인하고 있다.

기자가 “보통은 30분 정도 걸린다”고 말하자 그 시간을 맞춰보려는 듯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구글맵과 애플맵을 차례로 켜서 검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에릭은 “도로명 주소를 치니까 버스가 어떻게 가는지 나오지 않는다”며 “일단 이정표지판을 따라서 가보겠다”고 했다. 그는 “구글맵이나 애플맵,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서 한국어 주소를 영어로 바꾸는데 ‘길(Gil)’이나 ‘로(Ro)’는 제대로 번역도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며 한참을 동쪽으로 향하던 에릭은 전쟁기념관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멈춰섰다. 스마트폰과 버스정류장 번호를 번갈아 쳐다보다 740번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를 탄 뒤에도 문배동(백범로) 쪽으로 가는건 아닌지 안절부절했다.

그러다 당초 내려야 할 정류장을 한 곳 지나서야 버스에서 하차했다. 언덕길로 되돌아 올라가야만 했다. 마침 관광경찰 초소 하나를 발견했다. 에릭은 초소 근무자에게 식당의 도로명 주소를 보여주자 “신주소라서 회나무로가 어딘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근무자도 포털 지도서비스로 검색한 뒤에야 길 안내를 해줄 수 있었다.

결국 출발한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경리단길에 도착했다. 길을 따라 올라가며 회나무로라는 갈림길을 찾았고 15분이 추가 소요된 끝에야 식당에 도착했다. 하지만 식당은 식사시간이 지나 문이 닫힌 상태였다.

에릭은 “한국의 주소 시스템은 일관성이 없는 것 같다”며 “경리단길과 회나무로가 무슨 관계인지 잘 모르는 건 둘째치고 길 번호가 16 다음에 20-4로 나오는 등 숫자가 잘 이어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에릭과 헤어진 뒤 강남 지역으로 가봤다. 길에서 만난 영국인 맥스(75)는 반포의 A 호텔 바우처(이용권)을 보여주며 “반포동과 신반포로가 같은 곳이냐”고 물었다. 바우처엔 도로명주소와 지번 주소가 함께 기재돼 혼선을 주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 만난 영국인 엠마(34ㆍ여)도 “왜 주소가 두개씩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업무상 한국을 찾은 일본인 회사원 요시무라(43)는 택시를 타고 ‘청담동 영동대로 736’이라고 적힌 주소를 기사에게 보여줬다고 한다. 하지만 택시 내비게이션이 구주소 방식이라 교통안내 부스를 찾아가 지번 주소로 변환해달라고 한 뒤에야 다시 택시를 탈 수 있었다. 요시무라는 “버스 노선이 전부 동이나 전철역으로 표시돼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온 개리(36), 나탈리(39ㆍ여) 부부는 “한국에서 명동 같은 곳을 가려면 구글에다 주소를 두세번씩 바꿔서 쳐야 한다”며 “처음 찾기엔 너무 복잡하고 버스 노선도 보면 전부 동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한 렌트카업체 직원은 “외국인이 렌트를 해서 내비게이션을 빌려주면 일부러 (구주소와 신주소) 2개를 적어주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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