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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를 베지 않는 ‘나무꾼’…배병우에 취하다
-‘솔섬’ 작가 英 마이클 케나와 2인전 앞둔 배병우, 파주 헤이리 작업실을 가다
-전시 2월 6일부터 3월 8일까지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서
-‘트랜스포머’ 감독 마이클 베이ㆍ필리프 벨기에 국왕도 최근 그의 작품 컬렉션


[헤럴드경제=김아미 기자]고백하건데 인터뷰는 실패였다.

한국 풍경사진의 살아 있는 거장 배병우(65). 30년 동안 아날로그 필름을 고집하며 카메라로 한국화의 정서를 담아 온 ‘소나무 작가’ 배병우를 파주 헤이리 작업실에서 만나기 전까지 그에 대한 선입견은 ‘과묵하고 불친절한 작가’였다. 

‘오름’ 작품 앞에서 배병우 작가.

일면식도 없던 이에게 그가 건넨 첫마디는 “와인?”이었다. “소주 맥주는 다 엉터리 술”이라고 말하는 와인 애호가 배병우는 시작부터 취하게 만들었다. 와인에, 헤이리 겨울 풍경에, 그리고 인간 배병우에게 정색을 하고 마주 앉아 나누는 인터뷰는 실패였던 셈이다.

배병우 작가가 ‘솔섬’ 공방으로 논란 혹은 이슈를 제기했던 영국의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와 2인전을 갖는다. 전시는 2월 6일부터 3월 8일까지 삼청동 공근혜갤러리에서다.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라기보다 최근 솔섬 패소 판결을 놓고 예술계 저작권 보호의 취약성을 한국 사진계의 어른으로서 좌시하고 있을수만은 없었던, 그랬기에 일종의 ‘행동’을 보여주려는 전시다. 전시 타이틀은 ‘흔해 빠진 풍경사진’전. 멈추어진 풍경을 너도 나도 찍으면 다 똑같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무식함’에 반발한 반어법이다.

전시를 계기로 만난 배병우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한 거창한 철학을 늘어놓지도, 성공한 작가로서의 거만함을 보이지도 않았다. “하도 지랄들을 해서”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함으로 솔섬 논란에 대해, 사진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최근 새 단장을 마친 배병우 작가의 아카이브실.

▶어찌 됐든 케나와 함께 하는 전시니까, 솔섬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은데…. 다들 그러더라. 시대를 대표하는 사진작가인데 이런 상황에서 한마디 안하면 비겁한 거라고. 풍경 사진은 보호할 수 없다는 그 판결문, 쓱 보고는 읽지도 않았다. 판사의 저 ‘잔소리’는 판결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납득할 수 없는 논리 전개에 불과한 거였다. 분노가 일기에 앞서 나라의 수준을 보여주는 거다. (동행한 사진 기자에게) 내가 가서 찍은 사진, 다시 가서 똑같이 찍으려고 하면 찍어지더나? 절대 안 된다. 하물며 수십년 동안 눈여겨 보지도 않았던 솔섬이라는 곳을 (케나가 찍고 나니까) 거의 90% 가까이 똑같은 프레임으로 찍었다는 것은 대놓고 따라한 거나 마찬가지다. (대한항공이 TV 광고에서 솔섬과 유사한 사진을 내보낸 것을 두고 케나의 한국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최근 원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패소한 바 있다)

▶최근 작업은.

-3월 20일에는 광주시립미술관, 9월 26일엔 샹보르(Chambord)에서 개인전을 갖는다. 5월쯤 밀라노에서 그룹전도 있다. 샹보르는 프랑스 루아르강 남쪽에 있는 그 지역 최고 규모 성(城)인데 최근 작업을 마치고 왔다. 프랑스 성 사진 같지 않다고? 그게 그들이 내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들이 프랑스에 작가가 없어서 나에게 부탁을 했겠나. 내가 그들과 정서가 다를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전혀 다른 시각과 스타일로 사진이 나올 것을 알기 때문에 나를 선택한거다. 솔섬도 그렇지만, 사진은 찍는 사람마다 다르고 찍을 때마다 다르다. 

30년째 아날로그 필름을 사용하는 고집스런 사진작가의 암실.

▶배병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미국 팝가수 엘튼 존이 사진을 구매한 뒤 유명세를 탔다.

-하아…. 그 얘기는 이제 그만. 차라리 다른 컬렉터 얘기를 하자. ‘트랜스포머’ 감독 마이클 베이와 벨기에 국왕이 최근 내 사진을 컬렉션했다고 한다. 내가 소속작가로 있는 벨기에 갤러리가 판매했다. 전부 신작이다. 벨기에의 악셀 페어보르트(Axel Vervoordt)라는 세계적인 컬렉터가 만든 갤러리다. 성주(城主)이기도 하고. 나하고는 친한 친구 사이다.

▶왜 계속 소나무를 찍나.

-고객들이 자꾸 찾으니까. (특정 스타일이) 심볼화하면 장ㆍ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나로선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서 오름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다들 소나무가 보고 싶대. 찍어달라는 데 별 수 있나. 팔아서 먹고 살아야지.

스마트폰 사진을 보여주는 배병우 작가.

▶제주의 바다와 돌을 찍은 적도 있다.

-소나무도 그렇고 돌도 그렇고 만남과 ‘어우러짐’이 시적이고 회화적이다. 소나무는 우리 나라의 상징을 찾아 나온 답이었고, 바닷가는 내 생활이었다. (배병우는 전라도 여수에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보냈다)

▶아날로그 필름만 쓰는 이유도 궁금하다. 작가적 정신의 발로인가.

-(질문을 자르며) 아유 별거 없어. 하던 일 계속 하는 것 뿐이지. 디지털이 더 잘 찍힌다. (스마트폰을 보여 주며) 필름보다 이게 더 낫다. 색감도 다양하고. 이걸로 소나무 찍은 사진을 사람들 보여주면 자지러진다. 그런데 그냥 익숙한 거 하는 거다. 

배병우 작가가 최근 작업을 마친 프랑스 샹보르 성 사진들을 공개했다.

▶배병우의 사진은 수묵화 같다.

-내가 그걸로 남을 현혹시켜 돈을 버는거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죽을 때 그랬다더라. 쓸데없는 작품을 만들어서 신과 인간들을 모독했다며 미안하다고. 나도 그런 셈이다. 발품 좀 팔아 열심히 찍고 다행히 그런 나의 사진이 (사람들에게) 설득이 되고 해서 밥을 먹고 사는 거지. 내가 나무꾼이다. 나무 장사하는 사람. 그런데 나무를 베지 않는 나무장사다. (소나무 사진을 찍은 만큼) 나무를 벴으면 산 몇개 분량을 벴겠지.

▶작품이 비싸겠다. 돈도 좀 벌었겠다.

-오해 좀 하지 마라. 제일 비싼게 1억 정도 했다. 작품 팔고 나면 돌아오는 액수가 3500만원쯤 되는데 이 중에서도 3분의 2가 제작비로 날아간다. 나한테 남는 건 결국 천만원 정도다. 다들 판매된 금액만 생각하고 내가 돈 좀 있는 줄 안다. 16년 전부터 혼자 살고 있는 데 젊은 여자들이 내가 수백억대 부자인 줄 안다. 허허.

▶여자친구가 많은가 보다.

-여자친구 많지. 이웃집 아줌마도 여자친구 아닌가. 여자는 매일 만나야 하는 거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칠십 먹은 부자 친구가 있었는데 재혼을 하고 싶은 데 여자들이 안 따르더란다. 그래서 그랬다. 80대 후반이라고 해라. 그랬더니 정말 금방 장가를 갈 수 있었더란다. 여자들이 ‘돈 많고 명 짧은’ 남자를 좋아한다던데 정말 그런가? (웃음)

▶프리퀄 형식을 빌려 보자. 배병우는 어떻게 사진을 시작하게 됐나.

-고등학교 친구 중에 사진을 찍는 이가 있었는데 그를 따라 당시 여수에 있는 ‘입체사’라는 디피점(Develop and Printㆍ필름 현상과 인화를 하는 곳)을 자주 갔었다. 그때부터 사진을 접하게 됐다. 그런데 최근 이모들이 말씀하시더라. 나 중학교 때 외삼촌이 사진을 했었는데 내가 그의 암실에도 자주 가고 했었다고. 그때부터 사진과의 인연이 시작된거라고. 나는 기억도 안 난다. 아마도 내가 유명해지니까 이모들이 기억을 되살려본 거 겠지(웃음). 대학 때 선배의 권유로 사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골목에서 같이 그림 그리던 형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진으로 먹고 산거다.

▶배병우는 행복하겠다.

-나도 입에 풀칠하기 시작한 것은 나이 오십이 넘으면서부터다. 그 전까지는 빚으로 살았다. 그런데 오십이 넘으니까 그동안의 빚이 1년 반여만에 다 갚아지더라. 나는 평생 동안 즐겁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도 버니까 럭키(Lucky)한 거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배병우 작가는 그의 작업들을 아카이브하기 위해 최근 작업실 한 켠을 새롭게 단장했다. 사랑방 같은 작업실과 아카이브실을 이어주는 좁은 복도에 수백개는 족히 돼 보이는 네잎클로버를 모아 만든 액자가 눈에 띄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여자친구와 두어시간만에 찾은 것이란다. 그는 네잎클로버 찾기의 달인이다. 어떻게 이렇게 네잎클로버를 쉽게 찾는가를 물으니 “집중하면 보인다”고 했다. 새벽, 소나무를 대할 때 작가의 자세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amigo@heraldcorp.com

사진=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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