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해준 선임기자]“정부가 세법을 개정하고, 건강보험료 체계를 바꾸려 했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반발이 있더라도 이유를 설명하고 바른 방향을 찾아가도록 노력해야죠. 그게 국민이 원하는 정부 아닙니까? 일부 반발이 있다고 1년도 안된 정책을 바꾸고, 수년 동안 준비해온 개혁안을 갑자기 폐기한다면 어떻게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 한국 사회를 혼돈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던 연말정산 파문과 주민세ㆍ자동차세 인상 철회, 건보료 개혁안 폐기까지 갈팡질팡하는 정부 정책에 대해 한 민간경제연구소 고위관계자가 익명을 요구하며 한탄하듯 내뱉은 말이다. 그는 국민들의 정서적 반응과 표심(票心)에 정책이 원칙없이 갈지(之)자를 그리는 것은 포퓰리즘 양상과 다르지 않다고 우려했다.
새해 담뱃값 인상에 이어 연말정산 파문으로 정부와 여당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고 국정지지율이 급전직하하자 정부가 국민들의 고통분담이 필요한 ‘불편한’ 정책을 피해가려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이 증세 논란으로 번질 소지가 있는 정책이나 공공요금 인상에 난색을 표하는 것도 정책 일관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미 개혁안을 완성해 29일 최종 확정할 예정이었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개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어느 정도 이뤄졌던 사안이다. 현재의 건보료 부과체계는 많은 소득을 올리더라도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피부양자로 등록되면 건보료를 한푼도 내지 않는 등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 때문에 정부는 월급 이외 고소득 직장인의 보험료를 올리고 저소득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를 내리는 등 소득 중심으로 보험료를 부과해 형평성 논란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춰 개편안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개편안 확정 하루 전 갑자기 논의 중단을 발표했다. 최신 데이터를 통한 시뮬레이션과 건보료가 인상되는 국민들에 대한 설득 및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연말정산 파문에 놀란 정부가 건보료가 오를 것으로 보이는 고소득층 45만세대 가량의 ‘예상되는’ 불만 때문에 수년 동안 준비해온 개혁을 백지화한 것이다.
앞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난을 완화하기 위해 주민세와 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가 정치권의 반발에 하루만에 철회하는 소동을 빚었다. 이것도 정부와 여당 사이에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진 사안이었다.
정 장관은 “지난해 지방세제 개편 논의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이 부분을 부담스러워했지만 심각한 지자체 재정난을 직접 설명하고 대통령의 결심을 받아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은 악화하는 여론에 ‘증세 불가’로 입장을 바꾸었다.
이러한 혼란은 ‘증세 없는 복지’를 고집하는 청와대와 소신없는 관료사회, 내년 4월 총선에서의 표심 향방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정치권의 합작품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경제의 저성장 기조 진입과 저출산ㆍ고령화로 세수 부족이 고착화할 것으로 보이는 마당에 ‘증세 없는 복지’ 프레임에 갖혀 있는 한 이런 혼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해결의 키는 박근혜 대통령이 쥐고 있다는 것이 정치권과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누군가는 직언을 하고 실마리를 풀어야 하지만 총리에서 부총리까지 모두 내년 총선을 바라보는 정치인 출신으로 채워진 현 구도에서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올해가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이라며 이를 화두로 내걸었지만, 제대로 될지 우려가 앞선다.
당장 표를 의식해 정책이 갈팡질팡한다면 악화된 국민 여론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효과는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신뢰가 떨어지고 표도 더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다. 불편하더라도 일관성있는 정책으로 국민과 소통하는 게 신뢰도 향상의 첩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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