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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리치-인사이드] 평민곁에 영면한 ‘2경8000조원 주인’의 마지막 길
[헤럴드경제=슈퍼리치섹션 윤현종 기자]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제군주국가입니다. 국왕은 국가원수직과 총리직을 겸하며, 입법ㆍ사법ㆍ행정 3권을 장악하고 행사합니다. 종교(이슬람교)의 수장도 겸직합니다. 20여년 전부턴 국왕에게 ‘성스러운 사원 2개의 수호자’란 호칭도 주어졌습니다. 이슬람 성지 수호 임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이 나라의 왕은 자신이 다스리는 땅에 묻힌 석유의 명목상 주인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석유 매장량이 가장 많습니다. 2012년 기준 2620억 배럴입니다(미국 CIA 집계). 이를 작년 국제원유 평균가격(배럴 당99.7달러)으로 계산하면 26조달러 가량 됩니다. 한화 2경8000조원 정도 됩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가치의 자산을 발 밑에 두고 있던 왕도 세월을 이기진 못했습니다. 23일(현지시간) 새벽 사우디의 6대 지배자였던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은 폐렴으로 입원한 지 약 열흘 만에 타계했습니다. 향년 90세, 즉위 10년만입니다.

23일 타계한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

고(故)압둘라 국왕이 이기지 못한 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종교의 힘입니다. 지극히 소박한 그의 장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왜일까요. 

뉴스위크는 압둘라 국왕의 장례가 “사우디의 지배 이념인 수니파 이슬람 근본주의(와하비즘) 지침을 따른 결과”라고 전합니다. 와하비즘 교리는 사치스러운 장례 행사를 우상 숭배에 가까운 죄악으로 간주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국왕이 서거해도 공식적인 애도 기간을 두거나 추모 집회를 여는 일이 없다는 것이죠. 사우디의 ‘정교일치제’를 수호한 국왕은 이슬람 교리에 마지막까지 헌신하는 셈입니다. 

실제 사우디 왕실은 국왕 사망 당일 오후 애도 예배 형식의 간소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리고 수도 리야드에 있는 알오드 공동묘지에 시신을 안장했습니다. ‘평민’ 옆에서 영면을 맞이한 것이죠. 시신 매장은 특별한 행사 없이 압둘라 국왕의 친인척 남성들에 의해 간단하게 이뤄졌습니다.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

압둘라 국왕은 이 묘지에 묻힌 선대 국왕이나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묘비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 뿐 아닙니다. 그의 시신은 관도 없이 흰 천만 한장 둘렀습니다. 묘소에는 봉분을 올리는 대신 흙바닥에 얕게 자갈을 깔았습니다. 간신히 무덤이라는 것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울러 왕국 주변의 깃발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높이로 내걸렸습니다. 정부 기관들도 아랍권의 주말인 금ㆍ토요일이 지나면 일요일부터 정상 근무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사우디 성지 메카의 예배모습.

오히려 그의 마지막 길을 기리기 위해 장례식을 찾거나 조문을 보낸 해외인사의 면면이 훨씬 화려한 편입니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조문을 위해 23일 오후 늦게 리야드에 도착했습니다.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와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 등 일부 중동 국가 지도자들도 세계 경제 포럼이 열리는 스위스의 다보스를 떠나 리야드로 향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양국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압둘라 국왕의 확고하고 열정적인 믿음에 감사한다”며 조의를 전했습니다.

이슬람 시아파 맹주로 사우디와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온 이란도 외무부 명의 성명에서 사우디 정부와 국민에게 조의를 표한다며 “이란을 대표해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24일 사우디의 리야드를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대변인을 통해 “압둘라 국왕의 죽음은 사우디 국가와 국민에게 큰 손실”이라며 “국왕은 현명하고 일관된 지도자이자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자국민에게 존경받아 왔다”고 밝혔습니다.
사우디와 같은 수니파 대국인 이집트는 앞으로 7일간을 조문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중국과 일본ㆍ영국ㆍ프랑스ㆍ이스라엘ㆍ캐나다ㆍ인도 등도 성명을 내고 압둘라 국왕의 타계에 조의를 표했습니다.
한 나라의 지존이었던 그는 앞서 언급했듯이 한화 2경8000조원 정도되는 어머어마한 석유의 주인이었습니다. 아울러 개인재산만 170억달러, 우리 돈 18조원 이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승길도 이승에 있을 때처럼 화려하고 장대하리라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공수래(空手來) 공수거(空手去)’ 여섯글자가 뇌리를 스치는 오늘입니다.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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