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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난세계사] 다빈치는 괴상한 요리사였을까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기사 <‘요리덕후’ 다빈치의 못다 이룬 꿈> 20일자 기사의 다음 이야기입니다.

# 나이 서른에 스포르차 가문이 운영하는 밀라노 어느 레스토랑에 취업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 때부터 요리 연구에 매진하던 그는 궁중 연회 담당자가 됩니다. 30년 동안이나 말이죠. 참고로 스포르차 가문은 당대 잘나가는 집안으로 손꼽힌답니다. 요리사로서 권위를 인정받은 셈입니다.

레오나르도는 이 시기에 주방 일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발명품을 쏟아냅니다.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가 없어요. 삶은 계란을 같은 크기로 자르는 기계, 후추를 가는 페퍼 밀, 거대한 믹서기, 포도주형 코르크 마개, 와인따개, 병따개, 건조대, 마늘 빻는 기구, 자동 석쇠 장치, 온수 보일러 장치, 컨베이어 벨트 모두 그가 설계하고 제작한 주방기기입니다. 여러 명의 일꾼이 수작업으로 반복해 해야 하는 일을 간단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었죠.

이 뿐이 아닙니다. 소개팅에서 먹기에 가장 무난한 음식으로 꼽히는 스파게티. 네 그렇습니다, 레오나르도가 만들었습니다. 당시 밀라노에 스파게티와 비슷한 면 요리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이미 200여년 전에 중국에서 가져온 국수가 알려져 있었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국수는 식탁 장식품으로만 쓰였어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처음으로 만든 스파게티. 헝클어진 면을 나이프로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레오나르도는 삼지창 모양의 포크도 제작하게 된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나폴리에서 빈대떡처럼 넓고 두꺼운 면으로 만든 파스타와 중국의 국수를 합친 음식을 만듭니다. 기계를 만들어 밀가루 반죽을 길게 잡아 늘여 삶아보죠. 그게 ‘먹을 수 있는 끈(스파고만지아빌레)’이라는 의미의 스파게티입니다.

덧붙이면 스파게티를 면발을 뽑는 기계, 스파게티를 먹기 위한 삼지창 모양의 포크, 냅킨도 레오나르도가 만든 발명품이에요. 그는 냅킨 접는 방법을 그림으로까지 남겼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발명품은 외면 받기 일쑤였습니다. 500년이 지난 지금이야 이 모든 주방기기가 익숙하지만, 당시에만 해도 그의 모든 발명품은 지나치게 거대했고 또 지나치게 혁신적이었어요. 레오나르도는 최고의 음식과 최고의 요리사로 살고 싶었겠다만 시대의 눈높이를 벗어난 천재성이 그를 요리사가 아닌 예술가로 가둔 게 아닐까요.


# 그러던 어느 날, 레오나르도는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 벽에 ‘최후의 만찬’을 그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당시 43세의 레오나르도. 수염이 허옇게 세었지만 예술적인 혼도 넘치던 때입니다.

역사학계에선 요리라는 주제에 솔깃한 레오나르도가 식탁 위의 음식을 그리는 데 집중하느라 작품을 완성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아니다 예수와 유다의 모델을 찾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10m 남짓의 벽 앞에 서서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고도 하고 포도주를 그리기 위해 한동안 수도원의 와인 창고에서 제자들과 포도주만 음미했다고도 하니 둘 다 맞는 주장이 아닐까 싶어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1977년부터 22년간의 마지막 복원 작업을 거치며 “복원 화가들이 80%, 다빈치가 20%를 그린 작품”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여전히 최고의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아무튼 레오나르도는 ‘최후의 만찬’을 완성하는 데 무려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립니다. 보통 벽화가 제작되는데 걸리는 시간의 2배가 걸린 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직접 음식을 맛보고 식탁 위의 음식을 배치하는 데 레오나르도는 무려 2년 9개월을 보냈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도대체 뭐를 먹었을까, 벽을 바라보며 고심을 거듭했을 레오나르도의 모습이 상상이 되시나요. 채식주의자 레오나르도의 입맛을 보여주듯 말입니다, ‘최후의 만찬’의 식탁 위를 보면 소박하고 담백한 음식들로 채워져 있는 걸 볼 수 있답니다.

덧붙이면 레오나르도의 발목을 잡은 건 식탁 위 음식만이 아니었어요. 예수를 배반한 유다의 이미지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아 한동안 붓을 놓고만 살았다고도 하니까요. 그가 그림을 그리는 속도가 얼마나 더뎠으면 수도원장이 그걸 또 스포르차에게 가서 일러바쳐요. 레오나르도가 게으름을 피운다고 말이죠. 수도원장은 레오나르도에게 빨리 그림을 그리지 않으면 보수를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도 놓습니다. 그 때입니다. 화난 수도원장이 유다의 이미지와 꼭 닮았다고 생각한 레오나르도. 즉각 붓을 들고 벽에 수도원장을 그립니다.

비가 오나 밤이 깊어지나 벽 앞에서 생각에 잠기는 레오나르도. 꼬박 3년 만에 휘황찬란한 ‘최후의 만찬’은 드디어 완성됩니다. 이 벽화는 밀라노와 피렌체는 물론 이탈리아의 모든 전역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죠. “그 전에 있던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홍수와 같이 예술계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는 극찬을 얻고요.
‘최후의 만찬’ 식탁 확대 그림.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너희 중 누군가가 나를 배신할 것이다”라고 말하자 놀라서 몸을 뒤로 젖힌 유다의 모습도 담겼다. 돈주머니를 오른손에 움켜쥔 인물이 유다이다.

# “하루를 즐겁게 보내면 단잠을 잘 수 있듯,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면 행복한 임종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평생 값어치 있는 일을 하나도 하지 못한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크문트 프로이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가르켜 ‘모두 잠들어 있는 어둠 속에서 너무 빨리 깨어난 사나이’라고 했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레오나르도는 너무 빨리 태어난 것 같다. 너무 빨리.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엉뚱하고 괴상한 음식만 만드는 요리사’로 낙인 찍혔던 레오나르도. 67세에 임종을 맞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일기입니다. 그는 온갖 멸시와 타박에도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천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레오나르도도 자신을 평가하는 데 있어선 엄격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자신의 삶에 후회가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더 이상 긴 말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밤 단잠을 자고 싶지 않으신가요.


(*) 레오나르도의 요리는 뒤늦게 프랑스 앙리 왕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왕의 신임을 얻은 레오나르도는 임종도 앙리 왕의 무릎에서 했답니다.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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