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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보다 싼 우유…체면 구긴 ‘완전식품’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우유는 못 먹고 가난하던 시절 부족하던 영양을 보충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굴을 ‘바다의 우유’라고 부르듯이 우유는 그 자체로 영양의 상징이자 대명사였다.

그런 우유가 세계적으로 넘쳐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우유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젖소를 도축하고, 영국에서도 낙농업을 접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하루 수십톤의 우유가 버려지는 상황이다.

우유가 넘쳐나는 기본적인 이유는 공급 과잉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의 원유 생산량은 약 220만8000여 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5.8% 증가했다.

한국은 불과 3년 전인 2011년 초까지만 해도 구제역 등의 영향으로 젖소 사육두수가 39만6000여 마리까지 줄어 우유 공급이 모자랄 것을 걱정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2014년 3분기 현재 젖소 사육량은 42만8000여마리로 3년여간 3만 마리가 늘었다. 거기에 겨울 날씨까지 포근하면서 생산된 우유의 양도 더욱 크게 늘어났다. 겨울 날씨가 따뜻하면 착유량도 증가한다.

좋은 날씨로 인한 우유 생산 증가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좋은 날씨 덕분에 우유가 과잉생산되고 미국, 뉴질랜드의 가공업체에서는 유제품 생산을 증가시킨 탓에 전세계적으로 우유 가격이 지난 12개월여에 걸쳐 50% 이상 폭락했다.

반면 수요는 점점 줄고 있다. 좋은 먹거리가 넘쳐나면서 더 이상 ‘완전 식품’이라는 것만으로는 소비자의 구미를 당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요구르트 등 발효유 시장의 정체와도 맥을 같이 한다.

한국의 경우, 지난해 1월부터 9월까지 소비자 조사 결과 가구당 4주 평균 우유 구매량은 5.33kg으로 전년보다 3.63%가 줄어들었으며 구입금액도 2% 줄어든 1만3597원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선진 시장에서는 이런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유업계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중국과 같은 거대 신흥시장이지만, 중국의 수요는 예상만큼 증가하지 않았다. 중국 내 우유값은 계속 떨어지는 상황이다. 중국은 지난해 2월부터 생우유 가격이 10개월 연속 하락하면서 전년에 비해 6.1% 나 떨어졌다. 새해 들어서도 우유 가격은 더욱 떨어져 올해 1월 첫째주 전국 주산지 생우유 가격은 kg 당 3.67위안(한화 640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4%나 폭락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 시장을 바라보고 투자를 늘린 세계의 우유 업계에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뉴질랜드는 가장 큰 우유 수입처였던 중국이 수입량을 줄이자 기업과 낙농가에 도산 공포가 퍼지고 있다. 뉴질랜드의 경우 낙농업이 가장 활발한 북부지방의 와이카토에는 10년 전 450만마리의 젖소가 있었는데 지금은 650만마리까지 늘어난 상황이다.

중국 낙농업 분야의 중심지인 광동 지역에서조차 하루 20톤 이상의 우유가 버려지고 있다. 중국 광명유업의 올해 들어 9월까지의 총 손실액은 8650만 위안(약 153억5000만 원)에 달한다. 

한국의 유가공업계 역시 지난 5월부터 중국으로의 우유 수출이 막히고, 국내 소비도 부진해지면서 재고가 쌓이자 11년만에 감산에 들어갔다. 서울우유협동조합은 낙농가 당 3마리씩 젖소 의무도축안도 확정했다.

영국도 낙농업계를 떠나는 농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국농업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달 만해도 낙농업자 60명이 그만뒀다. 영국 최대의 낙농회사 ‘퍼스트 밀크’는 최근 낙농가에 우유 대금 결제를 미뤘다.

메우릭 레이먼드 농업인협회장은 BBC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는 우유가 저평가되는 걸 지켜보고 있다. 특히 액상 우유는 이제 물보다도 더 싸다. 돈을 버는 낙농업자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출혈을 감수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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