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남주 기자] #1. 회사에서 주당으로 소문난 30대 중반의 오상식(가명) 과장은 폭탄주 마니아다. 오과장은 최근 가진 대학 동창생과의 송년회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한바뀌 쫙 돌리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게 자랑거리다. 어떤 송년회 자리도 폭탄주 한 두잔이 돌면 금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뀐다는 게 폭탄주 마니아 오과장이 말하는 폭탄주 예찬론이다.
#2. 50대 직장인 박인철(가명) 씨는 요즘 폭탄주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과민성대장증상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 씨는 폭탄주를 마신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잦은 설사로 인해 화장실을 수없이 오가는 등 불편을 겪어야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이같은 이유 때문에 폭탄주를 거의 마시지 않고 있다.
하지만 박씨도 요즘 참석하는 송년회 자리에선 눈을 딱 감고 폭탄주 5~6잔은 마신다. 오랫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나는 송년회 자리에서 모두들 마시는 폭탄주를 거절했다간 자칫 분위기를 망치는 팔불출이라며 왕따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감 때문이다.
연말 송년회 시즌이 본격화하면서 폭탄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맥주와 소주나 맥주와 양주 등 두 가지 이상의 술을 섞은 폭탄주 섭취가 늘고 있어 주목된다. 이는 여성음주 인구가 늘어나면서 폭탄주 수요가 자연스럽게 많아진데다 폭탄주가 대중화되면서 단체모임에서 폭탄주 마시는 빈도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에너지음료와 과실음료 등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에너지폭탄주나 과실폭탄주 등이 등장한 것도 폭탄주가 늘어난 또 다른 요인중 하나다.
23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7∼8월 전국 17개 시ㆍ도에 거주하는 만 15세 이상 남녀 2000명으로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도 주류 소비·섭취 실태조사’ 결과 조사 대상자 중 95.0%가 음주 경험이 있었으며, 처음으로 술을 마신 연령은 평균 19.7세였다. 2012년 조사 때의 20.6세보다 1세 가량 낮아졌다.
특히 폭탄주 음주는 크게 늘었다. 이번 조사에서 음주 경험자 가운데 폭탄주를 마신 적 있는 사람은 55.8%로, 전년도의 32.2%에 비해 70% 이상 크게 늘었다. 폭탄주 가운데에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이른바 ‘소맥’을 마신 경우가 96.0%로 가장 많았고, ‘위스키+맥주’(34.4%), ‘소주+과실주’(2.6%), ‘맥주+과실주’(1.4%) 등도 있었다.
특히 카페인이 많이 들어있는 에너지음료와 술을 섞어 마시는 ‘에너지폭탄주’를 경험한 사람이 2012년 1.7%에서 지난해 11.4%로 급증했고, 음주 중에 에너지음료를 마시는 비율도 6.2%에서 24.7%로 늘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성인남녀 2066명을 대상으로 벌인 주류 소비·섭취 실태를 조사에서도 전체 대상자 가운데 626명(33%)이 폭탄주를 1회 이상 마신다고 대답했고, 이중 607(97%)는 소맥을 술자리 평균 4.1잔 먹는다고 밝힌바 있다.
또 젊은층일 수록 폭탄주를 즐겨 마시는 것으로 나왔다. 최근 1년간 폭탄주 마신 경험은 20대가 49.2%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30대가 34.9%, 40대가 32.0%, 10대(15∼19세)가 22.7%, 50대가 21.2%, 60대가 12.1%순이다. 20~30대가 폭탄주를 즐기는 폭탄주 마니아층인 셈이다.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잔돌리기, 회식 문화 등의 술문화로 인해 소주와 맥주나 양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가 단골메뉴로인기를 끌고 있다”며 “송년회가 몰려 있는 연말엔 기존의 폭탄주는 물론 에너지음료나 과실음료 등을 맥주나 소주에 혼합해 마시는 이색적인 폭탄주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폭탄주가 건강에 해롭다는 전문가의 지적에도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목넘김이 부드럽고 빨리 취할뿐 아니라 송년회 같은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를 돋우는 술로 제격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폭탄주를 찾는 수요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