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아베 정권이 14일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것은 장기 집권을 향한 ‘정권 리셋(Reset)’에 성공한 것을 의미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이번에 야당의 허를 찌르는 연내 조기 중의원 해산으로 선수를 쳐 대승함으로써 장기 집권의 반석을 다지고 정권의 독주 체제를 확실히 굳혔다. 특히 여당이 중의원에서 3분의 2 의석 확보에 성공, 야당의 내각 불신임안 제출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참의원에서 법안이 부결되더라도 중의원에서 재가결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정권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번 총선은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져 각료들이 동반 사임한 올 9월의 개각 실패와 지지율 저하를 조기 수습하기 위해 아베 총리가 때마침 굴러들어온 소비세 인상 연기를 명분으로 내세워 꺼낸 비장의 카드였다.
반면 분열 상태의 야당은 아베 정권의 노림수대로 전열을 미처 갖추지 못한 채 총선을 치러 패배했다. 제1야당 민주당은 아베 정권이 아베노믹스 실패를 희석시키기 위해 ‘대의 없는 중의원 해산’을 단행한 것이라고 공세를 폈으나 역부족이었다.
야당의 패배로 각 당의 이합집산을 통해 야당 재편이 이루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그러나 야당끼리도 개헌 문제와 집단 자위권 행사 용인 등을 둘러싸고 입장이 달라 야당 재편을 통해 ‘일강다약(一强多弱)’의 현 상황이 타개될지는 미지수다.
일본 정가에서는 아베 정권이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를 염두에 둔 ‘초장기 정권’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벌써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한 첫 관문이 2015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의 무풍 재당선이다.
아베 총리로서는 이번 총선 승리로 스스로 건강에 이상이 없는 한 이러한 초장기 집권을 위해 우선 건너야 할 과제들을 해결한 셈이 됐다. 자민당 내에서 아베 총리 이외의 대안도 없거니와 대항마가 나서기도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정계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2016년 여름 참의원 선거를 중의원 선거와 동시에실시해 승리한 후 자민당규 개정을 통해 현재 최장 6년(2기 연임 시)인 총재 임기 연장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이번 중의원 해산은 각료들의 비리 의혹으로 저하된 정권 구심력을 1966년 중의원 해산을 통해 만회, 7년 8개월간을 장기 집권했던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정치 수법과 닮았다. 사토 전 총리는 “개각은 하면 할수록 총리의 권력이 약화하고 중의원은 해산할수록 총리의 권력이 강화된다”는 말을 남겼다.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이번 총선에서는 개헌을 쟁점으로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으나, 내년에 집단 자위권 안보 법제 정비 등을 거쳐 개헌 작업에 시동을 걸 것으로 보고 있다. 아베 정권은 중의원에서는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317석)이 넘었지만, 참의원은 아직 개헌 의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나 2016년 여름 참의원 선거 여하에 따라서는 언제라도 개헌안이 발의될 수있는 상황이 된다. 작년 7월 참의원 선거 대승과 이번 총선 승리의 기세로 미뤄 참의원 개헌 라인 확보는 사실상 시간문제다.
아베 총리는 개헌을 ‘나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해 왔다.
다만, 그는 총선 전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뷰에서 “국민 간에 개헌 논의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1차 정권 때인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을 적극 쟁점화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개헌 이슈화를 내내 삼갔다.
집권 자민당도 이번 총선 공약에서 “개헌 원안을 국회에 제출, 국민투표를 실시해 개헌을 추진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에 그쳤다. 총선 쟁점으로 삼았던 경제 문제의뒤켠으로 개헌의 발톱을 숨긴 것이다.
하지만, 개헌 정지 작업은 누가 봐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자민당은 2012년 이미 개헌 초안을 마련했다. 이 초안에는 일왕을 국가 원수로 하고 국방군을 창설하는내용 등이 들어가 있다.
국민투표법도 지난 6월 국회에서 개정돼 개헌안이 국회에서 발의되면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는 법적인 개헌 절차가 갖춰졌다.이에 맞춰 일본 최대의 우파 운동단체인 ‘일본회의’ 측은 최근 1천만 명 개헌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국민투표는 과반수만 찬성하면 개헌이 성립되는데, 투표율 등을 감안할 때 3천만 표만 모으면 개헌이 이루어진다는 계산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