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빈곤’에 허덕이는 근로자들
‘모 아니면 도’式 근로관행에 기인
직장·가정생활 양립가능한 일자리
시간선택제가 가장 바람직한 대안
며칠 전 언론에서 ‘시간빈곤’이라는 다소 생소한 용어를 접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의 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 근로자 10명 가운데 4명은 직장 일이 너무 바빠서 가정뿐 아니라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특히 여성의 경우에 시간빈곤율은 70%에 달한다. 열심히 일해도 삶이 팍팍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한다.
우리의 일하는 문화는 ‘모’ 아니면 ‘도’이다. 전일제(full-time)로 일하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든지 둘 가운데 하나다. 전체 근로자 가운데 시간제(part-time) 근로자의 비중은 10% 내외에 불과해 네덜란드(약 40%)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친다. 기업 입장에서는 근로자 관리에 큰 비용이 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적게 뽑아서 일을 최대한 많이 시키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오래 일하는 관행이 굳어져온 것이다.
이런 고용문화를 바꾸기 위해 정부는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확산시키고 있다. 시간선택제는 기존의 시간제와 다소 다르다.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의 130% 이상이고,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무기계약직 등의 요건을 만족시키는 일자리를 새로 만든 경우에 기업은 정부로부터 여러 가지 자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전의 유명한 빵집인 ‘성심당’이다. 튀김 소보루빵과 부추빵으로 유명한 곳이다. 얼마 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방문기간 내내 교황 식탁에 빵과 디저트를 제공해드린 그곳이다. 300명 정도의 근로자 중에 워킹맘 23명이 시간선택제로 일한다. 일전에 이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모두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부심이란 단순히 돈을 벌어 가계에 보탬이 된다는 데 그치지 않았다. 아이들도 시간선택제로 일하는 엄마를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러워하고, 시부모님들도 며느리가 성심당이라는 곳에서 일하는 것을 존중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젊은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 같이 일하는 것이 즐겁고 한층 젊어지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시간선택제 근로자는 “셋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니까 다시 일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러다 성심당에 시간선택제로 취업해서 케이크 만드는 일을 하게 됐는데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많은 전업맘들이 저처럼 시간선택제 일자리로 희망을 찾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원하는 시간선택제 근로자는 올해 안에 약 5000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물론 이는 200만명에 달하는 통상의 시간제 근로자에 비하면 작은 숫자다. 그러나 기존의 고용관행을 타파해 괜찮은 기업에서 괜찮은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도록 유도하기 위한 마중물로서, 의미 있는 출발이라 믿는다.
정부는 내년에도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을 위해 계속 노력할 계획이다. 특히 기업이 새로 시간선택제 근로자를 채용한 경우뿐 아니라, 기존의 전일제 근로자를 본인이 원하는 바에 따라 시간제로 바꾸어주는 경우에도 지원할 예정이다. 근로자가 자녀보육이나 가족 간병, 본인학업 등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할 때 활용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기업이 계약직 시간제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경우에도 지원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질낮은 일자리를 양산하는 정책이라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심당에서 일하고 계신 셰프들에게는 그런 말을 삼가길 권한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알바’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어요”라는 어느 분의 말씀이 귀에 생생하다. 우리는 온전한 직장인으로서 그분들이 갖고 있는 자긍심을 더욱 북돋아줘야 한다. 모든 시간제 근로자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일을 하면서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양립시킬 수 있도록 정부는 계속 노력해나갈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