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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소가 비단옷 입고, 학이 장군인 나라(?)
춘추시대 중국의 천자국이던 주(周)나라 장왕(莊王)의 서자로 퇴(頹)라는 사람이 있었다. 장왕의 총애로 방약무인하게 컸던 그는 왕위를 노리게 되고, 위(衛)ㆍ연(燕)과 손잡아 반란을 일으켜 조카인 혜왕(惠王)을 쫓아내는 데까지 성공한다. 그런데 퇴는 소를 유난히 좋아했다. 최고급 곡식을 먹이고, 비단 옷까지 입혔다. 사람들은 이 소들을 비단 옷 입은 짐승이란 뜻의 ‘문수(紋獸)’라고 불렀다.

반란이 얼추 성공하자 퇴는 후원에서 소들을 살피느라 정신이 팔려 진압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진압군에 도성이 함락되고 퇴는 도망친다. 문제는 도망 길에까지 소들을 대동하면서 생겼다. 왕궁에서 자란 소들은 비만과 운동 부족으로 제대로 걷지 못했다. 결국 퇴는 소와 함께 추격군에 붙잡혀 목이 잘린다.

퇴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위나라 군주가 혜공(惠公)은 반란에 참여한 죄 때문에 이후 제후들의 공적이 된다. 그런데 혜공의 아들인 의공(懿公)은 학(鶴)을 유난히 좋아했다. 장군에 임명하고, 봉록까지 줬다. 하지만 외적이 쳐들어오자 ‘학장군’들은 무용지물이었다. 유명한 ‘호학망국(好鶴亡國)’ 얘기다. 결국 당시 위나라는 소와 학 때문에 잇따라 위기를 겪은 셈이다.

요즘 우리 경제에도 ‘문수’, ‘학장군’들이 생긴 건 아닌 지 걱정된다. 정치권력과 일부 내수기업의 야합이 만든 ‘○피아’들 때문이다.

아직 국제화는커녕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피아’의 치부를 드러내는 금융권, 방만경영을 ‘정피아’로 유지하는 공공기관 등이다.

글로벌 경쟁을 치르면서 어째든 우리 제조기업들은 상당히 투명해졌다. 투명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해서다. 제조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온 부(富) 덕분에 금융기업들과 공공기관들이 덩치를 키울 수 있었다. IT기업들의 높아진 경쟁력이 이통사들의 빠른 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최근 제조기업들은 정말 어렵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다 경쟁까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런데 금융기관들은 정책금리 인하가 이뤄지자 예금금리는 재빨리 낮추면서 대출금리는 오히려 더 올렸다. 국책금융기관들은 가혹한 구조조정으로 기업들의 목을 죄고 있다. 공공기관 개혁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통사들은 ‘단통법’이 소비자 부담만 늘리는 이유를 휴대폰 제조업체 탓이라고 호도하고 있다.

제조기업들의 이익이 내리막이다. 내년 무역흑자도 줄어들 전망이다. 외국인들은 연일 우리 주식과 채권을 내다팔고 있다. 경제위기가 올 지 모른다는 우려도 크다. 정작 경제가 위기에 빠졌을 때 이들 ‘○피아’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조업이 우리의 화식(貨殖) 근본임을 잊지 말자.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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