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진 차의과학대 부총장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2013년 현재 한국인의 삶의 질은 세계 15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질은 과연 그러한가. 세월호 참사에 이어 28사단 윤 일병 집단구타 사망사건으로 온 국민이 충격과 비탄에 휩싸여 있는 마당에 삶의 질 세계 15위라는 게 얼마나 실감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윤 일병 사망사건은 지구촌 곳곳에 자리하면서 인류를 위협하는 집단폭력의 한 단면이다. 국제사회를 살펴보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아동을 포함한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다. 이라크 정부군과 반군과의 내전도 장기화되면서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 백인경찰의 흑인 사살 사건으로 미국 미주리 퍼거슨시에 집단 유혈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인간사회가 파멸해가고 있다’,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지옥같은 세상이 됐다’는 말세론적 탄식도 터져 나온다.
돌이켜보면 지난 100년 동안 약 2억 명이 크고 작은 집단폭력으로 희생됐고, 이들 중 절반은 군인이 아닌 무고한 시민이었다. 세계보건기구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1세기의 초입인 2000년 한 해 동안 30만 명이 무력충돌로 사망했다고 한다.
집단폭력의 원인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다. 사회학자들은 민주적 절차에 대한 인식 부족, 권력의 불균형, 종교갈등, 사회적 차별, 경제적 이해관계 등을 주요 원인으로 분석하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집단폭력은 사회의 잘못과 개인의 잘못이 빚어낸 결과다. 사회가 잘못한 부분은 부조리한 사회제도와 관행을 고쳐서 해결해야 할 것이고, 개인이 잘못한 부분은 상담과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집단폭력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한 것 같아 유감스럽다. 국제사회의 개입도 미온적이다. 여러 차례 중재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중동지역의 무력분쟁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휴전에 합의했지만 이스라엘은 언제든 공습을 할 것이고 이라크 내전도 여전히 뜨겁다.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온 군부대 의 집단학대와 구타문제도 마찬가지다. 한두 번의 반짝조치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집단폭력이 존속하는 한 개개인의 삶의 질은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집단폭력의 현장이 전쟁터든 군부대든 학교든 길거리든 간에 집단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공포와 절망 속에서 행복과는 거리가 먼 고통스런 세상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집단폭력은 개개인의 삶의 질과 행복수준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는 주범 중의 주범이다. 민주주의의 근본정신은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이루기 위한 것인데, 집단폭력은 인권말살의 대표주자다. 따라서 집단폭력이 자행되는 사회는 민주주의를 논할 자격이 없다.
집단폭력은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국민행복과 사회통합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서도 집단폭력 근절을 위한 노력을 최우선적으로 경주해야 할 것이다.
지난 14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희망과 위안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황은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 위로하면서 ‘사랑’, ‘마음’, ‘사람’이란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필자는 이 단어들이 집단폭력 해결을 위한 근본정신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제 다 같이 나서서 실천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