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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터랩] 짧게 일하면서 잘 사는 ‘풍차의 나라’ 비결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짧은 나라, 네덜란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연간 근로시간에 따르면, 네덜란드 노동시간은 1383시간으로 가장 짧았다.

이는 한국(2163시간)보다 780시간 적은 것으로, 주당 15시간 덜 일하는 셈이다. 네덜란드가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고도 잘 사는 비결은 뭘까.

▶파트타임 천국=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세계 2위 인재 파견회사 ‘란스타드’에서 일하는 페트라 페만(32)은 현재 임신 중이다. 지금은 하루 8시간ㆍ주 5일 근무하고 있지만, 출산 후에는 하루 8시간ㆍ주 4일 파트타임 근무로 전환할 생각이다. 남편도 주 5일에서 주 4일로 바꿔 두 사람이 벌갈아 가며 쉬는 날 아이를 돌볼 계획이다.


한국에서 파트타임은 곧 ‘비정규직’, 다시 말해 4대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로 여겨진다. 그러나 네덜란드 상황은 다르다.

네덜란드에서 파트타임은 ‘시간제 근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근무시간이 줄어들면서 급여가 줄 뿐 사회보장이나 연금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파트타임 범위도 넓다. 일반 서비스업에서 고급 전문직까지 전방위로 확산돼 있다.

변호사, 의사,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변호사협회 프레드릭 리프랭 회장은 “전체 공동경영자의 40%가량이 여성이고, 건강한 일과 생활의 균형을 위해 주 4일 파트타임 근무를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네덜란드 여성의 파트타임 비율은 61.1%로 OECD 주요국 가운데 최고다. 남성 역시 30%에 육박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덜 일하고 잘 사는 비결?= IMF(국제통화기금)  통계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네덜란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7650달러이고 한국은 2만3837달러다.

네덜란드가 짧은 노동시간에도 불구하고 잘 사는 비결은 높은 노동생산성과 여성의 활발한 사회진출이 꼽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네덜란드가 높은 노동생산성을 실현할 수 있는 주된 요인은 정규 근무시간 이외에 잔업이 없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상사와 노동시간을 면밀히 협의한 후 일을 하기 때문에 야근 등 시간외 잔업은 발생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이 정한 시간만 일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짧은 노동시간을 보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과로사’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이 끝나면 바로 귀가해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공서열 차별도 없다. 네덜란드 최대 식품회사인 유니레버에 다니는 일본인 이노우에 후미코는 “매니저를 제외하면 직장 구성원 대부분은 거의 동일한 대우를 받아 연령과 근무연수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래 일하면 보너스 지급액 정도의 차이”라고 덧붙였다.

네덜란드 여성 취업률도 69.6%로 OECD 주요국 중 최고다. 지난 반세기 네덜란드의 여성 취업률은 40%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네덜란드는 70년대 초만해도 유럽에서 가장 낮은 20%대의 여성 취업률을 보였지만, 파트타임 문화가 자리를 잡으면서 육아를 병행하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상당히 높아졌다.

여기에는 정부의 보조도 큰 역할을 했다.

▶육아위해 ‘남녀 2명이 1.5인분’ 노동=1990년 이후 네덜란드 육아 세대 사이에서는 아이를 돌보면서 ‘남녀 2명이 1.5인분 일하는 구조’가 타당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페트라 페만(왼쪽)은 출산후 주 4일 근무로 바꿀 예정이다. 파트타임으로 전환하지만 사회보장이나 연금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출처:니혼게이자이신문]

파트타임제를 이용해 남녀 각각 주 5일 근무를 주 4일로 줄이고 평일에 쉬는 하루를 아이를 돌보는 시간으로 삼는다.

평일 3일만 육아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하루씩 부부가 아이들을 맡는 셈이다.

남녀 모두가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작업방식이 추진되는 움직임도 있다.

네덜란드 정부산하 의약품평가위원회의 경우 직원 300명중 80%가 전문지식을 가진 고급인력이지만, 이들 사무실에는 전체 직원 65%분의 책상 밖에 없다.

일할 곳은 사내에서 자유롭게 선택하고, 인터넷을 활용한 재택근무도 추천한다.

위원회 측은 “사무실에 있는 의미는 회의 때문”이라며 “나머지는 유연하게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한다. 실제로 노동생산성도 상당히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네덜란드병’ 고친 파트타임=네덜란드에서 야근 등 시간외 근무가 사라지고 여성이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게 된 것은 1980년대 ‘네덜란드 병’을 고치기 위해 파트타임이 활성화되면서다. 

당시 네덜란드는 오일쇼크 여파로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고 마이너스 성장이 지속됐다. 여기에 물가앙등과 임금인상, 노동 없는 복지까지 이른바 ‘네덜란드 병’이 고착화되기 시작했다. 

네덜란드 병을 치유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바세나르 협약’이다. 바세나르 협약이란 1982년 바세나르에서 타결된 노사정(勞使政) 대타협으로 노조는 임금동결, 기업은 노동시간 단축, 정부는 재정 및 세제 지원을 약속했다.

바세나르 협약으로 파트타임이 활성화되자 청년실업은 절반으로 떨어졌고 1996년까지 120만개 새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일 수 있었다.

이후 1996년 ‘동일노동ㆍ동일임금’ 합의와  2000년 ‘노동시간 조정법’이 시행되면서 파트타임 차별을 없앴다. 노동자들은 이를 통해 시간당 임금을 유지하면서 노동시간 연장 혹은 단축을 주장할 수 있게 됐다. 

사회보장이나 연금권리 등에서 풀타임과 파트타임의 구분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독신ㆍ결혼ㆍ육아ㆍ노후’라는 인생의 국면에 맞춰 일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네덜란드 문화로 자리잡은 것이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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