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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해창 선임기자의 세상읽기> 개성~평양 고속도로에 대한 추억

[헤럴드경제=황해창 선임기자] 우리 정부의 남북대화(고위급) 제의가 일단 무산됐습니다. 회담 날짜인 19일이 북한의 묵묵부답 속에 그냥 지났습니다. 날짜 맞추기 뭣하면 편한 날 정해달라는 우리 측 부탁이 있었기에 좀 더 기다려 볼 일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정부가 대북경협 확대의지를 거듭 천명하고 나섰습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응답을 촉구라도 하듯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눈에 확 띄는 수준의 남북 교역 및 대북 신규투자 계획을 밝힌 겁니다.

물론 “여건 조성‘이라는 전제를 달기는했지만 지난 2010년 3월 천안함 격침사건에 따른 우리 정부의 대북경협전면금지조치(5.24조치)를 사실상 해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거듭 지적하지만 이제 그럴 때도 충분히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사업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 개성~평양 고속도로는 기자에겐 참으로 귀한 추억이 있는 도로입니다. 그러니까 1992년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당시는 총리회담) 우리측 대표단 일행(취재단)으로 이 고속도로를 통해 평양에 간 적 있습니다. 당시 홀수는 서울, 짝수는 평양 개최였는데 아무튼 운 좋게도 총리실 출입기자로서 미지의 세계로 인식됐던 북한 땅을 밟은 겁니다.

도로망을 전쟁승리의 중요조건으로 여기는 북한 <제공: 안병민>

         
특이하게도 북한은 남북회담을 위해 이 고속도로를 새로 깔았었습니다. 판문점을 통해 육로를 달리는 데 양생된 지 얼마 안 돼서인지 콘크리트(시멘트) 내음이 물씬 풍겼던 기억 생생합니다. 곳곳에 군인들이 공사를 했다는 표시가 눈의 띄었고요. 그래서인지 마무리작업(매무새)이 조악하다고 할까요. 아무튼 매끈한 맛이 전혀 없었습니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손으로 곡괭이로 파내고 고르고 다듬고 시멘트를 바른 흔적이 역력해 짠하기도 했었습니다.

최근 김일성 주석 급서 20주기 때 본란을 통해 글을 썼습니다만, 김 주석 사망 2년 전인 당시 북한 경제는 악화일로였습니다. 소련붕괴와 동구권 해체 등으로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져들 무렵이었습니다. 후원 또는 동맹국 간의 교역이 끊기면서 원자재 수급은 물론 외환까지 고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으로서는 남측 손님을 위해 파격을 보인 셈입니다.

돌이켜 보면, 굴이나 다리 놓는 기술로 치면 대한민국 건설공법은 국제무대에서 단연 톱입니다. 바로 정주영 식 공법,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돌관형(突貫型)’ 말입니다. 당시는 이것 하나로 남북경제는 완전 역전됐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북한은 국제적 고립에, 남한은 88올림픽 성공개최를 계기로 북방외교(소련 중국 동구 연쇄 수교)에 성공하는 등 국운상승기였으니까요.

다시 북한 도로망 문제로 돌아갑니다. 최근 기자는 국내 북한전문가 27명과 함께 ‘이제는 통일이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중 ‘북한 인프라(도로편)’을 담당한 한국교통연구원 안병민 박사(북한·동북아연구실장)는 이렇게 말합니다. 북한은 도로를 ‘인민경제의 중요 구성부문’이며 ‘수송수요의 보장, 경제건설, 인민에게 생활편의를 보장해 주는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겁니다. 더 주목할 것은 도로를 ‘전쟁승리의 중요조건’으로 강조한다는 사실입니다.

안 박사에 따르면 북한 최초의 고속도로는 1979년에 완공된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라고 합니다. 남포는 90년대 중후반 남북 분단사 최초로 ㈜대우가 공단을 설립해 운영하다 접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개성공단 원조쯤으로 훗날 기록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 고속도로는 평양 만경대구역과 남포시 항구구역을 연결하는 총 연장 53km의 4차선 콘크리트 고속도로라고 합니다. 이후 평양-원산, 평양-개성 고속도로 등의 순으로 새로운 고속도로가 건설되었으며, 김 주석 사후 3~4년의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평양-남포 간 10차선 고속도로인 청년영웅도로가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북한의 고속도로는 평양-원산, 평양-개성, 평양-향산, 평양-남포(청년영웅도로), 평양-강동, 원산-온정리 고속도로 등 총 6개 노선이 있으며, 노선 연장은 661km에 달합니다.

북한의 고속도로는 엄격하게 차량을 통제하는 데 운행이 가능한 차량은 외국인관광객 수송용 차량, 북한주민의 혁명전적지 참관용 차량, 긴급물자 수송차량, 도시 간 시외버스, 군 작전용 차량 등으로 제한된다는 군요.

더 흥미로운 것은 북한에서 도로망 계획을 수립할 때 지켜야 할 원칙이 무척 까다롭다는 사실입니다. 첫째, 해당지역의 경제발전 및 건설과 관련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의 말씀’과 당의 방침에 철저히 입각할 것, 둘째, 인민경제의 모든 부분을 유기적으로 결합, 장성하는 수송수요를 원만하게 보장할 것, 셋째, 지역 간 문화적 연계와 주민들의 이동상 요구를 원만히 보장할 것, 넷째, 도로망은 될수록 농경지를 침범하지 않는 원칙을 지킬 것, 다섯째, 자동차 운행을 편리하고 안전하게 보장할 것, 여섯째, 모든 리(里)에 들어간 도로들을 정상적으로 조사하여 더욱 개선할 것, 일곱째, 도로망은 농촌경리 기계화를 성과적으로 보장할 수 있게 계획할 것, 여덟 번째, 도로망은 국방상 요구에 맞게 계획할 것 등입니다. 이것을 따른다면 도로망 구축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바로 이게 문제입니다. 고속도로는 더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찌됐건 우리 정부가 대북 경협 신규사업 재개는 물론 대북 투자허용까지 전면적으로 또 전향적으로 검토키로 한 것은 아주 잘 된 일입니다. 변화무쌍한 동북아 정세를 감안하더라도 더 이상 남북관계가 경색일변도여선 곤란합니다. 대화하고 이해하고 그래서 화해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북 공존시대를 열고 이웃나라 보란 듯이 어깨 힘주고 살날 맞게 됩니다.


hchwa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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