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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두살 순교자, 이봉금의 삶
[헤럴드경제] “천주를 욕하고 저버리면 살려주겠다.” “천 번 죽어도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천주교 순교자 124위를 복자(성인의 바로 전 단계)로 선포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박해인 신해박해(1791년)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죽음으로 신앙을 지켰던 천주교 신자들이다. 이 가운데 열두살 어린 나이에 신앙을 지키려다 죽음을 맞은 최연소 순교자 이봉금(1827∼1839)의 사연이 주목받고 있다.

이봉금은 정해박해(1827)로 인해 피신 생활을 하던 이성삼ㆍ김조이 부부의 딸이다.

일찍부터 어머니에게서 신앙의 가르침을 받은 봉금은 어린 나이에도 진심으로 천주를 사랑했다고 한다. 열살 무렵 교리문답과 아침ㆍ저녁 기도를 배운 뒤 선교사를 만나는 행운도 누렸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지인의 집으로 몸을 피했다가 그곳에서 포졸들에게 체포돼 전주로 압송됐다.

봉금은 신문 과정에서 관원들이 서양 선교사가 간 곳을 캐묻자 자신은 어려서 그런 일은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천주를 욕하고 저버리면 살려주겠다’는 관원들의 말에도 그는 신앙을 저버리지 않았다.

“어려서는 철이 나지 않아 읽을 줄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몰라 천주님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일곱 살 때부터는 천주를 섬겨왔으니 아무리 천주님을 배반하고 욕을 하라고 하셔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봉금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다행히 형벌을 받지 않은 채 옥으로 끌려갔다.

어머니가 딸의 신심을 떠보려고 “너는 배교할 것이다”라고 했지만, 봉금은 “어떤 일이 있어도 신앙의 가르침에 충실하겠다”고 말했다.

어린 봉금에게 동정심을 느낀 포졸과 옥리들은 목숨을 건지라고 했으나 그의 태도는 나이답지 않게 꼿꼿했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끌려나가 협박과 고문을 받았지만 굴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어머니가 옥중 순교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킨 봉금은 결국 어느 추운 겨울밤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나이에 교수형에 처해졌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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