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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과일 대란’…러시아 농산품 금수조치 후폭풍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러시아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제재에 맞서 서방의 농산물ㆍ식품 수입을 1년 간 금지하면서 유럽 과일 농가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장기 보관이 어려운 과일의 특성상 러시아를 대체할 수출길을 빨리 뚫지 못하면 유럽의 과일 농가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화되고 있다.

▶러 ‘금수’에 과일농가 직격탄=13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의 서방 농산물 금수조치로 유럽 과일 재배농가에 비상이 걸렸다.

과일은 고기나 생선, 유제품처럼 장기간 냉동 보관이 여의치 않아, 러시아의 대안을 찾는 게 다른 어떤 식품보다도 촉박한 상황이다. 고기는 급속 냉각하거나 도살시기를 늦추면 되지만, 과일은 수확하는 순간부터 신선도가 떨어지고 영양소가 손실된다. 따라서 시급히 다른 수출로를 찾지 못하면 창고에서 썩어가는 과일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할 처지다.

특히 이상기후로 예년에 비해 늘어난 생산량 때문에 추락한 가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지중해 복숭아 농가에겐 이번 금수조치가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재앙이 덮쳤다”는 비관까지 나온다.

또 러시아에 과일을 많이 수출해온 유럽국가들에서도 곡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3억1700만유로(약 4363억원) 규모의 생과ㆍ견과류를 수출한 폴란드를 비롯해 리투아니아(3억800만유로), 스페인(1억5800만유로), 벨기에(1억5500만유로), 그리스(1억700만유로) 등이다.

폴란드에선 하루 한 알 사과를 소비해 농가를 살리고 금수조치에 항의하자는 내용의 ‘사과 먹어 푸틴 골려주기’라는 내수 진작운동이 벌어지고 있지만, 이 같은 수출 피해를 상쇄하긴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EU는 브라질, 칠레, 터키 등의 국가들에게 유럽산 농산품 수출을 타진하는 한편, 복숭아 농가에 대한 재정지원 조치를 발표했다. 아울러 EU 회원 28개국의 농업 전문가들이 14일 브뤼셀에 모여 4억2000만유로(약 5780억4200만원)의 위기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지난해 유럽연합(EU)의 주요 대(對)러시아 수출품목. 왼쪽부터 생과ㆍ견과류, 고기류, 생선류, 유제품 순이다. 수출액의 단위는 100만유로. 옆에 있는 %는 각국의 비EU국 수출액 대비 러시아 수출액의 비중을 가리킨다. [자료=FT]

▶속타는 그리스 농부들=러시아의 서방 농산품 금수조치로 그리스 과일 농부들도 속앓이를 하고 있다.

러시아는 EU를 제외하면 그리스의 최대 교역국으로, 지난해 교역규모는 57억유로(약7조8449억원)를 넘는다. 그 가운데 금수조치로 그리스 과일 농가가 보는 손해액은 1억7800만유로(약 24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가디언에 따르면 러시아가 농산물 수입 금지를 발표한 지 일주일여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리스의 과일 농가 피해가 벌써 가시화되고 있다. 러시아 입경이 거절돼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지에서 트럭째 썩고 있는 복숭아가 최소 350만㎏에 이른다. 과일 재배농가가 1만5000가구 몰려있는 북부 지방에선 판로를 찾지 못한 농부들 때문에 냉동창고가 이미 만원사례다.

그리스 최대 농업협동조합을 이끌고 있는 크리스토스 얀나카키스는 가디언에 “그리스 복숭아 수출량의 60%, 딸기의 90%가 러시아에 팔려왔다”면서 “EU가 도와주지 않으면 그리스 농업경제는 붕괴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리스 청과물재배업자연맹 대표인 아포스톨로스 케라니스는 “한여름 동안 아직 수확되지 않은 복숭아가 350만㎏에 달한다”면서 “피해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상황이 이렇지만 그리스 정부의 해결 능력엔 물음표가 찍힌다. 일부 고위 관료들이 나서 농가들에 보상을 약속했지만 과도한 국가빚에 따른 재정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때문에 그리스의 제2차 세계대전 영웅이자 좌파 거물인 마놀리스 글레조스는 지난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감상적인 서한을 보내 그리스는 예외로 해달라고 청원한 바 있다.

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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