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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풍이 휩쓸고 간 필리핀, 아침식탁 부숴지다
[헤럴드경제=강승연 기자]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300마일 떨어진 도시 일로일로. 이곳에서 라이터와 바늘, 풀 등을 팔며 17명의 가족을 부양해 근근이 살아가는 레아 부안(28) 씨는 요즘 아침밥 먹기가 힘들다. 최근 무섭게 뛰어오른 식품값으로 고심하던 어머니가 ‘절식’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더이상 아침식사는 먹지 말자고 하세요. 대신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셨죠.”

이 같은 결정에 따라 부안 씨 가족들의 쌀 섭취량도 크게 줄었다. 이전에 하루 5㎏을 먹었다면 이젠 3㎏밖에 먹질 않는다. 무려 40% 줄어든 것이다. 한 사람당으론 하루에 고작 0.17㎏을 먹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최근 필리핀에선 부안 씨 가족과 비슷한 형편의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물가인상률이 두 배 넘게 뛰어올라 4.4%를 기록하는 등 살림살이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사진> 이달 초 필리핀 경찰과 식품청(NFA)은 식품 공급업자들에 대한 불시 단속을 벌이고 일부 업자들에 대해 NFA의 쌀을 재포장해 높은 가격에 판매한 혐의로 체포했다. 사진은 경찰 당국이 한 식품업체의 창고를 단속하고 있는 모습. [자료=필리핀 인콰이어러넷]

그 가운데 음식 가격은 지난달 전년동기 대비 7.4% 치솟아, 2009년 이래 가장 큰 폭으로 뛰어올랐다. 특히 필리핀인의 주식인 쌀은 1년 새 가격이 20% 폭등해 서민 가계의 주름살을 깊게 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필리핀을 휩쓸고 간 대형 태풍 ‘람마순’으로 농사까지 엉망이 됐다. 그 여파로 작황량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운임비까지 가파르게 올라 식탁물가엔 그야말로 비상등이 켜졌다.

필리핀은 인구의 42%가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갈 정도로 빈곤 가정이 많은 국가다. 저소득층 가계에 직결되는 식탁물가가 이처럼 치솟게 되면 실물 경제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에 필리핀 정부도 식품 물가 단속을 위해 팔 걷고 나서고 있다.

필리핀 식품청(NFA)과 경찰청 형사국(CIDG)은 쌀을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해 사재기 및 재포장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 공급업자들을 대상으로 이달 초 수차례에 걸쳐 불시 단속을 벌이고 그 가운데 혐의가 입증된 업자들을 체포했다.

또 베그니노 아키노 대통령은 관련 기관들에 식품 물가 인상을 억제하기 위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요청했다.

뿐만 아니라 필리핀 중앙은행(BSP)은 오는 3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3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BSP는 지난 2012년 10월 이래 오버나이트 대출 금리를 역대 최저 수준인 3.5%로 유지해오고 있다.

마닐라 소재 뱅크오브필리핀아일랜드(BPI)의 에밀리오 네리 이코노미스트는 “마침내 방아쇠를 당길 때가 됐다”면서 “금리 인상을 통해 BSP는 인플레이션 기대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시기적절하고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sparkli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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