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시다시피 기생충은 숙주의 몸속에 살면서 영양분의 일부를 빼앗아 먹는다. 그런데 숙주가 죽으면 기생충은 어떻게 될까? 본능적으로 기생충은 뭔가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살 길을 모색하지만, 결국 기생충은 그곳이 자신의 마지막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세균들이 숙주의 몸을 분해할 때 기생충도 같이 분해된다. 그렇다해도 기생충은 자신이 그 안에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는데, 그건 바로 알을 통해서다. 단단한 껍질에 싸인 알은 그 뒤로도 오래도록 남아 숙주가 어떤 기생충에 걸렸었는지를 말해 준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창궐했던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아이의 유골이 발견됐다. 그 유골은 지금부터 약 6200년 전 것으로 추정됐다. 이런저런 검사가 시행됐고, 골반 부위의 흙을 채취해 그 안에 혹시 기생충의 알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루어졌다. 과거 사람들이 다 그렇듯 거기서도 기생충의 알이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주혈흡충’이라는 기생충의 알이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주혈흡충 사례는 5200년 전 이집트 미라에서 발견된 것이었는데, 이번 발견은 그보다 천년 가량 더 오래됐다. 하지만 이번 발견의 의미는 단지 ‘가장 오래된 기록’을 세웠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혈관 속에 살면서 간경화를 일으키는 이 해로운 기생충은 물속을 헤엄치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맨발로 물에 들어온 사람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다. 사람이 맨발로 물에 들어가는 상황은 어떤 게 있을까? 물고기를 잡아먹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학자들은 관개시설이 이 기생충의 유행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추정한다. 즉 6200년 된 아이의 유골에서 발견된 주혈흡충의 알은 그 시대 메스포타미아 지역에서 관개시설을 이용한 농사가 이루어졌다는 증거란다.
기껏해야 몇 백 년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미라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고, 그 미라들도 나름의 진실을 얘기해 준다. 예컨대 350년 전으로 추정되는 다섯 살배기 미라에서 민물고기를 통해 전파되는 간디스토마의 알이 나온 것은 조선시대의 양반집 자제들은 다섯 살 때부터 생선회를 먹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렇게 본다면 기생충이 거의 멸종돼 버린 작금의 현실은 미래의 고고학자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 기생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차단돼 버리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기생충박멸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리라. 예컨대 지금부터 200년 후,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대학원생: 교수님, 서기 2014년으로 추정되는 미라가 발견됐습니다.
교수: 그래? 어떤 기생충의 알이 있는지 조사해 봐.
대학원생: (잠시 뒤) 교수님, 깨끗합니다.
교수: 과연 그렇군! 역사책에 의하면 그 시절 한국에는 전설적인 기생충학자가 살았다고 하는데, 그 영향일 거야.
대학원생: 그분 이름이 서민이던가요? 요즘도 그런 분이 계시다면 우리가 지긋지긋한 기생충 때문에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윽. 입에서 회충이 나오려고 해요.
교수: 저리 가게! 괜히 나한테 옮기지 말고!
서민 단국대 의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