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쌀 시장 개방을 공식 발표했다. 일부 농민단체 주장처럼 쌀 관세화를 유예하는 방안을 백방으로 검토해봤지만 의무수입물량(MMA)을 늘리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지난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방한한 호베르토 아제베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한국의 선택은 수입 쌀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관세화를 추가 유예하면서 이해 당사국들에 보상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이 주장해온 ‘추가 보상 없는 쌀 시장 개방 연기’가 불가하다고 못을 박은 것이다.
정부가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체결로 모든 상품 시장을 개방하면서도 쌀시장 개방을 올해 말까지 미룬 것은 농민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개방을 미룬 지난 20년 사이 MMA는 8배 늘어 올해 40만9000t(국내 소비량의 9%)에 달한다. 또다시 필리핀처럼 관세화 추가 유예를 따르게 되면 5년 뒤엔 연간 94만t(쌀 소비량의 20%)을 수입해야 한다. 득 보다 실이 훨씬 커지는 양상이다.
그동안 정부는 먹지 않는 쌀을 의무수입하는 데 3조원을 쏟아부었다. 전국 양곡창고에 보관 중인 MMA 재고는 50만t에 이르고 보관료만 해도 연간 200억원이 든다. 쌀 농가 생산기반시설에 26조원을 투자했고 쌀 전업농 규모화에 5조5400억원을 융자해줬다. 한 해 기초연금(약 10조원)에 드는 돈의 3배 이상을 그동안 사회적 비용으로 치렀다. 국민혈세를 더 이상 손해보는 게임에 지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쌀 시장을 개방하기로 결정한 만큼 수입쌀에 매길 관세율이 농심(農心)을 설득할 관건이다. 작년기준으로 국내산 쌀 가격은 ㎏당 2189원이었고, 중국산과 미국산은 각각 1065원과 791원이었다. 국내산 쌀이 중국산보다는 2.1배, 미국산보다는 2.8배가 비싸다. 따라서 관세율을 300% 이상으로 정한다면 수입쌀의 유통 가격이 국내산보다 더 비싸져 국내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다. 개방에 수긍하는 농민단체들도 400% 안팎의 고율 관세 유지 등의 대국민 약속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이 수준의 관세를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
정부는 성난 농심을 다독이기 위해 수입보장보험제 등 쌀 산업 대책을 내놓았다. 이와 병행해야 할 게 무역이익공유제다. 관세철폐로 이익을 보는 제조업체가 피해 농업을 지원한다면 갈등해소에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고품질 쌀로 수출시장을 뚫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