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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인 명의 월세방 소망하는 ‘한국전쟁 女학도병 1호’ 박이숙 할머니
[헤럴드경제=김상일(대구) 기자]“어린 나이에 몸집도 왜소하고 키도 작아 총을 들지 못하고 끌고 다녔습니다. 부상도 당하고 총도 많이 쏴 지금도 비가 오면 오른쪽 어깨가 아프답니다.”

6ㆍ25전쟁에 자원 참전했던 여자 학도병 1호 박이숙(경북 문경시 농암면ㆍ82) 할머니의 전쟁 회고담이다.

6ㆍ25전쟁 참전 당시 3편대 2지대 3중대 소속으로 계급없이 별칭 ‘박 중위’로 불렸다는 박 할머니는 당시 대전시 호서여자중학교 3학년 때 자원입대했었다고 했다.


박 할머니는 “당시 16세의 어린 나이로 2년 6개월 동안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전투에 참전했었지만 그중에 낙동강 전투에서 함께 지원한 학도병들 대부분이 전사했지만 낙동강 전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박 할머니는 한국전쟁 자원입대 동기가 당시 고려대 법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오빠가 6ㆍ25전쟁 발발 직후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었고 한 달 뒤쯤 안동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사망소식을 접한 후 오기로 1950년 7월께 여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었다고 회상했다.

전쟁 당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추위와 배고픔이었고(대부분 하루 한 끼 주먹밥 하나로 끼니 해결), 종전 이후는 총상으로 인해 남편에게 억센 여자라고 사랑을 받지 못해 6ㆍ25전쟁에 참여했던 것이 결혼생활에서는 흠이 되기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박 할머니는 지금도 좌측 발과 좌측 등에 그 당시 맞았던 총상으로 인해 지금까지 온몸이 쑤시고 아프다고 하소연했다.

전쟁 당시의 부상으로 지금도 몸이 불편하다는 박 할머니는 한국전쟁 이후 국가 유공자로 선정되지 못해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08년께 국가유공자로 선정됐다고 했다.

최근은 문경경찰서 농암파출소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박 할머니는 “당시 학도병으로 참전했지만 군번이 없었고 계급 등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국가유공자 혜택은 기대도 안하고 살아왔었다”고 했다.

농암파출소가 박 할머니 어려운 사연을 접하게 된 것은 지난 1월 중순. 추운 날씨에 전동차에 의지한 채 길을 가고 있던 할머니를 농암파출소 임장호, 차태현 경위가 눈여겨 본 것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해 3월 중순께, 임장호ㆍ차태현 경위가 할머니 댁에 찾아갔을 때 우연히 방바닥에 놓여있던 ‘태극기가 새겨진 뱃지’를 발견하게 됐다. 이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박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그제서야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박 할머니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대전의 모여자중학교 3학년이었고 충청도 서대산 전투에 여성 학도병 1호로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년 6개월 동안 전쟁터에서 생활했었다”고 했다.

전쟁이 끝난 후, 몸에 남은 총상 자국과 전쟁터 한복판에서 느낀 마음아픔으로 평범한 여자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힘들었다고 했다.

게다가 학도병으로 참전해 군번을 부여받지 못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다 6년 전에야 비로소 국가유공자로 지정돼 마음의 한을 풀었지만 여전히 월세방을 전전하는 곤궁한 처지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농암파출소는 할머니에게 더욱 관심을 가지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고자 주변에 박 할머니의 사정을 알리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의 건강관리를 위해 국가보훈처와 협의해 대구보훈병원에 무료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남은 여생을 손때 묻은 이곳에서 보내고 싶다는 할머니의 바램으로 대구보훈병원 무료 입원치료는 극구 사양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농암파출소는 박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더욱 자주 찾아 말벗을 해드리고 집주인에게 월세방 기한연장을 요청했다. 또 조금이라도 덜 적적하도록 유선방송을 연결해 드리는 등 따뜻한 관심의 손길을 이어가고 있다.

문경경찰서도 이를 알려 6월 ‘아름다운 동행’ 대상으로 박 할머니를 선정해 직원들의 성금으로 생필품을 전달하는 등 고단한 박 할머니의 삶을 위로해 주었다.

21세 꽃다운 나이때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고 있다는 박 할머니는 “50년 전에 남편이 사망했었고 친아들은 3년전부터 가끔씩 왕래한다”며 “현재 거주하고 있는 월세방을 제 명의의 단칸방 하나라도 만들어 이사하지 않고 편안하게 살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이야기했다.

박 할머니는 “경찰 도움이 감사하지만 보훈병원 입원이 자유롭지 못하고 너무 답답하다”며 “남은 여생은 물좋고 공기좋은 경북 문경 농암에서 마감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김청수 문경경찰서장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박 할머니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우리 지역에 어렵고 소외된 계층을 찾아 지속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mile56789@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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