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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X파일]야누자이, LA클리퍼스, 홍대 교수
[헤럴드경제=홍성원 기자]한 달도 남지 않은 브라질 월드컵. 한국은 어떤 성적을 낼 것인가 이상의 질문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조별 예선 3차전 상대인 벨기에 대표팀에 아드난 야누자이(19)라는 존재가 포함돼서 입니다. 유럽 프로축구계에선 일찌감치 ‘신성(新星)’으로 통하고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명문 클럽 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뛴다는 명성이 주는 부담도 우리로선 분명합니다. 측면과 중원을 저벅저벅 휘저으면서 ‘한 방’까지 날리는 자원이기에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1995년생으로, 큰 무대 경험이 많지 않기에 그가 실전에 투입될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있지만, 존재만으로도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이런 그에게서 짚고 넘어가야 할 건 나이에 걸맞지 않는 반짝이는 커리어와 플레이스타일만은 아닙니다. 야누자이는 혈통이 복잡합니다. 그래서 그가 어떤 국가의 대표로 뛸지는 초미의 관심이었습니다. 부친은 코소보계, 모친은 알바니아계라고 합니다. 조부모까지 따지면 터키, 세르비아로 국경이 넓어집니다. 맨유에서 뛰기에 2018년까지 잉글랜드에 살면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활약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의 선택은 출생국인 벨기에였고, 마크 빌모츠 벨기에 대표팀 감독은 지난 14일 브라질에 데리고 갈 예비 명단에 야누자이를 포함시켰습니다. 


존재 가치만으로도 세상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야누자이를 보면서 ‘4ㆍ16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월호에 몸을 실었던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은 대게 1997년생입니다. 야누자이보다 불과 두 살 어립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이들의 어이없는 죽음이 뼈아픈 이유입니다. 어린 세대들 사이에선 “한국에서 살고 싶지 않다”, “어른을 믿으면 저렇게 되는구나”라는 푸념과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답하기 어려운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한국을 더욱 절망적이게 하는 건 또 있습니다. 분노를 조절하고 사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질문을 토해내게 하는 인간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는 겁니다. 

얼마 전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가 보낸 e-메일을 열어보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가 “친구야, 거기서 머리 썩히지 말고 그냥 여기와서 마음 편히 살자”라고 편지를 마무리해서 입니다. 그가 이런 결론과 제안을 한 과정은 이렇습니다. 편지 내용의 일부를 전합니다.


“지난주 이 동네에서 유명했던 사건 중 하나는 NBA 클리퍼스 구단주의 인종 차별 발언에 대한 NBA의 결정이었다. 비록 구단주가 자기 애첩(?)에게 한 개인 통화 내용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시작되긴 했는데, NBA의 빠른 결정과 북미인들의 인종을 초월한 지지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하긴 구단주가 농구의 신을 모욕했으니 오죽했겠냐(중략).”

LA클러퍼스의 구단주 도널드 스털링이 본처가 아닌 여자친구에게 “흑인(매직 존슨을 지칭)과 어울려 다니지 말고, 내 경기장에도 흑인을 데려오지 마라”는 내용의 인종차별 발언을 한 게 공개돼 NBA 영구제명, 구단주 자격 박탈 등의 징계를 내린 걸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친구의 말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너희 신문을 봤는데 한국에서 홍대 교수가 세월호 유족들에게 참 몹쓸 말을 했더라. 지식인이라는, 교수라는 사람이 한 말과 며칠 전에 뉴스를 통해 본 청와대 앞에서 새벽에 경찰에게 무릎을 꿇고 울며 매달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치면서 마음이 참 아팠다. 말이라는 것, 특히 글이라는 것은 머리 밖으로 나오면 정말 무서운 칼이 될 수 있는 것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끔 그것을 잊고 사는 것 같다. 개인 간 말의 결과로 NBA에서 평생 출입금지 당하고, 구단을 팔아야 한다는 결정으로 비난을 당하는 구단주의 경우와 문제가 되니까 그 글 지우고 태풍이 지나가길을 기다라는 지식인의 모습…. 과연, 한국 사회에 미래가 있을까?”라고 했습니다. 

이 친구의 지적에 누가 반박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뿌리를, 내 나라를 등질 결심은 아직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반드시 해내겠다고 하는 ‘적폐 청산’, ‘국가 개조론’ 따위에 기대를 걸어서가 아닙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타인을 먼저 살리려다 유명을 달리한 분들, 합동분양소를 찾는 끊이지 않는 인파,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자신의 일처럼 발벗고 나선 자원봉사자들…. 국민이 중심이 된 공동체에선 사회정의가 살아 있어서 주저하는 겁니다. 야비한 지식인이 널려 있기에 희망은 옅지만, 야누자이의 선택을 부러워만하기엔 건전한 사람들이 만들어낼 한국이 걸어가야 할 미답의 경지가 바로 저기에 있습니다.

홍성원 기자/ho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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