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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 말씀 더는 못믿어…상명하달식 교육 탓에 친구들이…”
다섯 고교생 거침없는 ‘세월호 이야기’
“혼자 나가려 한다면 아이들이 싫어해
자기주도적 결정막아 안내방송 따랐을 것”
“물속 친구들 떠올리면 침울해지기도”
“日 등 안전한 나라 이민 생각한 적도”
“수학여행 없앤다니 결국 미봉책 불과”

기성세대보다 불만·불신 오히려 더 해
또래 아이들 잃은 상실감에 솔직한 분노
사회적 공감대 바탕 둔 근본대책 절실


세월호 침몰과 관련한 헤럴드경제와 두잇서베이의 공동 설문결과, 청소년들의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극도에 달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에 대한 전사회적 처방이 필요해 보인다. 또래 아이들을 잃은 상실감이 기성세대에 대한 더 큰 불만과 불신으로 이어지기 전에 사회적 공감대에 바탕 둔 대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고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인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을 비롯한 10대 청소년들의 충격은 그만큼 커 보인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을 뿐인데, 또래 친구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그 상실감이 어느 때보다도 치유될 수 없는 아픔으로 다가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 상실감과 아픔을 기성세대가 껴안고,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헤럴드경제는 이번 설문조사와 관련한 현장의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시의 한 고등학교를 방문, 다섯 명의 고등학생들과 함께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그들의 시각에서 사고 원인에 대해 분석을 내놓았다. 또 사고 수습 과정에서 선장 등 승무원들 뿐 아니라 정부와 수사당국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 청소년들의 의견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투박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을 가감없이 소개한다. (교육당국은 최근 각급 학교에 ‘유언비어 유포를 자제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인터뷰를 진행한 학교에서도 공익차원에서 익명을 요구했다. 이에 학생들과의 인터뷰는 가명으로 기재한다) 


▶학생회 활동을 하는 성희연(18ㆍ여) 양 “학생들이 희생된 건 한국 특유의 수직구조 때문”
=희연이는 페이스북으로 세월호 침몰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않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됐고, 같은 나이의 친구들이 희생됐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했다. 희연은 “선장은 배와 운명을 같이하면서 다른 사람은 살려야 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는 게 충격적이었고, 어떻게 저런 사람을 선장으로 뽑았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위에서부터 잘못된 느낌”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희연은 사고의 원인을 한국 특유의 ‘수직 문화’에서 찾았다. 희연은 “상명하달식 문화 때문에 ‘가만 있으라’는 지시대로 모두들 가만 있었다”고 했다. 그는 “나는 살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공부하라는 강요를 받은 적이 없다”며 “내가 만약 세월호에 있었다면 스스로 사태 파악을 하고 탈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정부가 구조가 아닌 다른 곳에 돈을 쓴다는 루머가 많은데 그런거 할 돈으로 빈민층을 도와주고 한 명이라도 더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희연은 불신도 내비쳤다. 그는 “자기 몸을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우리는 모두 공동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본다”며 “안전한 나라에 가서 내 뜻을 펼치고 싶어 이민도 생각해봤다”고 했다. 또 “일본을 싫어하긴 하지만 지진이 났을 때 일본은 (개인주의 대신 공동체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질서있게 대처했다”며 “이런 모습은 우리 모두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3남매집 장녀 장연희(18ㆍ여) 양 “애매한 말만 하는 대통령, 사실은 하는 일 없어보인다”=세월호 침몰 이후 줄곧 우울함을 느낀다는 연희는 “대통령은 언제나 ‘뭘 하겠다’가 아니라 ‘열심히 하겠다’는 애매한 말만 한다”며 사고 후 정부의 나태한 대응능력을 비난했다. 연희는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하는 일이 많겠지만 (국민들이)보기엔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며 “결국 사고를 선장의 책임으로 몰아서 정부는 책임을 피해가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또 “친구들 중에는 ‘놀고 먹고 싶어서’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었는데 이번 사고 이후 실제로 정치인들이 얼마나 아무것도 안하는지를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연희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아직도 많은 아이들이 물 속에 갇혀 있는데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도 될까”하는 생각에 침울해진다고 한다. 연희는 “언젠가 아빠가 ‘넌 죽지마’라고 말하시는데 슬펐다”며 “하지만 나는 다자녀를 둔 가정에서 자라 정부의 혜택을 많이 받은만큼 정부가 싫다고는 말 못하겠다”라고 울먹였다. 또 “적어도 한국에서는 총맞아 죽을 일은 없는만큼 배만 안 타면 안전한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배 타는게 좋았던 조은희(18ㆍ여)양 “수학여행을 없앤다니…결국 윗사람들이 편하기 위해 만든 해결책 아닌가요”=배 타는 걸 유난히 좋아한다는 은희는 사고 이후 정부 기관이 임시방편적인 대응을 내놓는 모습에 크게 실망했다. 그는 “동갑이라 마음이 더 안좋았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수습이 잘 되지 않는 걸 보고 이 나라가 안전한 나라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은희는 우선 “선장은 배의 총책임자인데 일부 승무원들만이 승객의 안전을 책임졌다”며 “선원들끼리 짜고 빠져나갈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만 있으라고 했다는 사실에 너무 화난다”며 했다.

은희 역시 희연처럼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대형 참사의 원인이라고 봤다. 은희는 “다 같이 선실에 모여 있다 누군가가 혼자 나가려 한다면 다른 아이들이 ‘혼자 튀려고 한다’며 다른 아이들이 싫어했을 것”이라며 “결국 자기주도적인 결정을 막고, 집단에만 따르도록 하는 교육 때문에 모두들 안내방송에 따랐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의 행정편의적 대응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은희는 “선원들도 문제지만, 출항과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가 대충 넘어갔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다”며 “친구들과 ‘만약 세월호에 있던 사람들 중 대통령 친척이나 가족이나 권력있는 사람들의 가족이 있어도 이렇게 더디게 진행됐을까’하는 말도 자주한다”고 했다. 또 “수학여행을 없앤다는 말이 있던데,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 하다”며 “‘어른들도 언제나 옳은 말만 하는게 아니다, 틀린 말도 있구나’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세금으로 유가족 지원비용 내야 하나” 김민수(18) vs “정부는 항상 국민들이 말할 때만 움직인다“ 이훈(18) 군=한편 정부를 불신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항해사가 꿈인 민수는 “모든 걸 다 아는 선장이 일찍 사라져서 구조가 늦어졌다”며 “청해진해운의 잘못이 SNS의 선동 글 때문에 정부 잘못이 되고 있다”고 했다. 민수는 “이 사고 때문에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사람들도 있다”며 “세월호 사건은 정부 탓이 아닌 선장 선원의 잘못”이라고 했다. 또 “세금으로 유가족 지원을 하자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건 말도 안된다”며 “이런 사건이 터지면 정부 탓을 하며 이민가겠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치안은 (다른 나라에 비해) 손꼽히게 좋은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청소년은 여전히 정부를 믿을 수 없다는 쪽이다. 훈이는 “헬기와 해양경찰이 충돌했다고 하지만 가장 먼저 학생들을 구한 건 민간 어선이었다”며 “정부는 언제나 대처가 너무 늦고, 사람들이 말을 해야 움직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또 “이민을 가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정부만 믿고 있을 수는 없다”며 “수영이나 호신술 등을 배워 내 몸은 내 스스로 지켜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서지혜ㆍ옥현주 기자/gyelov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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