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신경외과 김용휘 교수
뇌종양 분야 수술 ‘젊은 베테랑’ 콧구멍 통해 국내 첫 ‘척삭증’ 수술도
“치료전후 극적인 변화 신경외과 흥미 호르몬 이상 베트남인 부부 약처방받고 출산 편지…너무 즐거워”
“선생님. 저 결혼한 지 2년이 넘도록 임신이 안 돼요. 임신해야 돼요.”
결혼한 지 만 2년이 넘도록 임신을 못하고 생리까지 끊긴 새댁인 김모(29) 씨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서울대 신경외과 김용휘 교수(39) 진료실의 문을 두드렸다. 김 씨는 부작용으로 커져버린 두 손으로, 변해버린 얼굴을 감싸고 의자에 털석 주저앉아 눈물을 왈칵 쏟았다. 김 교수는 환하게 미소지으며 “손 내리고 얼굴을 보여줘야지. ‘에구…손이 많이 변했구나’ ‘여기도 아팠겠네’ ‘여긴 이랬겠구나’ ‘괜찮아요. 좋아질 거예요’”라고 환자를 안심시켰다.
김 씨가 임신을 못하는 원인은 ‘뇌하수체 선종’. 지난 2년간 내과, 정형외과, 한의원 등을 다니다 우연한 기회에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뇌하수체 선종이라는 진단을 받고 김 교수를 찾아온 것이다.
뇌하수체는 뇌의 정중앙부 하단에 위치한 기관으로 우리 몸의 호르몬기관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갑상선, 난소, 부신, 고환 등에 명령을 내리는 기관이다. 뇌하수체에 종양(선종)이 생기면 호르몬 조절능력에 이상이 생긴다.
“성장호르몬이 너무 많이 분비되면 거인증이 생기고 부신호르몬의 과다분비는 쿠싱증후군(달덩이처럼 둥근 얼굴 모양을 보이고 목 뒤와 어깨에 피하지방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증상), 젖분비호르몬이 과다분비되면 생리를 안 하게 되죠.”
뇌하수체 선종은 뇌종양의 일종으로 타 기관으로 전이는 안 되지만 악성이 되면 사망에까지 이르는 질환이다. 우리나라에서 뇌종양 환자는 1년에 약 5000여명이 발병하는데 뇌하수체 선종은 전체 뇌종양 환자의 약 25% 정도로 나타나고 있다.
“뇌하수체 선종은 갑상선이나 췌장질환과 같이 생기는 경향이 있어요. 이런 질환이 두 개가 겹쳐서 나타나면 뇌하수체 선종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아요. 특히 젊은 여성이 생리를 잘하다가 안 하는 경우, 특별한 안과질환이 없는데 점점 눈이 나빠지고 어지럽고 두통이 심하고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라면 검사를 받아야 해요.”
서울대병원 구내식당에서 만난 김용휘 교수는 뇌종양을 다루는 냉철하고 진지할 것 같은 기자의 선입견과는 달리 ‘해맑은 소년’ 같은 모습이었다. 인터뷰 요청도 너무 바빠서 병원 구내식당에서 한 시간 남짓 이루어졌고 쉴 새 없이 전화로 환자를 체크하고 지시를 내리기를 반복했다.
“뇌종양 환자의 경우 수술을 하면 무슨 돌발상황이 생길 지 몰라 보통 8시간은 곁에서 수시로 지켜봐야 해요. 오후 6시쯤 수술이 끝난다고 해도 새벽 1~2시까지는 꼬박 병원에서 대기하니까 수술 있는 날은 거의 병원에서 밤을 새는 게 일상이죠. 신경외과의 특성상 변수가 많아 술 약속을 거의 못해요. 지난해에는 친구들과 맘 편하게 저녁 약속 한 번 못 잡았어요. 언제 비상콜이 들어올지 모르니까 술 한 잔도 조심합니다.”
김 교수는 뇌종양 환자들, 특히 뇌하수체 선종 환자에게는 이미 유명한 ‘명의’이다. 인터넷카페인 ‘뇌하수체 선종을 이기는 사람들’에서는 김 교수의 ‘명불허전’의 실력과 함께 ‘가장 친절하고 꼼꼼한 설명을 잘해 주는 의사’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서울대 의대 출신인 김 교수는 과학고 출신이다. “원래 전기전자 쪽으로 진학하려고 했는데 고등학교 때 카이스트로 견학을 갔더니 학생들이 하루종일 연구실에만 매달려 있는 게 제 성격하고는 안 맞을 거 같아서 의대로 진로를 바꿨죠. 신경외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본과 2학년 때 서울대병원장을 역임한 정희원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는데, 한 여성이 불임을 검사하던 중에 뇌하수체 종양을 발견돼 수술 받은 이후 아이를 낳았고 교수님 존함을 따서 아이 이름을 지었다고 하셨어요. 그때 의사란 환자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고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경외과 치료 전후의 드라마틱한 변화도 굉장히 흥미로웠구요.”
김 교수는 세상에서 가장 불안하고 절망에 빠진 표정을 하던 환자가 환한 얼굴로 근황을 전해 올 때가 가장 의사된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도 제일 기분 좋을 때는 완치된 환자가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해 올 때입니다. 시신경에 뇌종양이 생겨 눈이 안 보이시는 70세 넘으신 할머니가 수술하고 눈이 좋아져 ‘나 이제 드라마 잘 봐요’ 라든지, 뇌하수체 선종으로 임신을 못했던 분이 ‘저 임신했어요!’라는 소식을 전해 올 때가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죠.”
김 교수는 아직 젊은 나이지만 뇌종양 수술 분야에서 베테랑이다. 특히, 뇌와 얼굴의 경계 부위(뇌 밑바닥)에 있는 척삭에 종양이 생기는 ‘척삭증’은 국내에서도 연평균 8건밖에 발생하지 않는 희귀 악성 뇌종양으로 지금까지는 두개골을 열고 접근하는 전통적인 수술법으로는 병변 부위에 접근하는 것조차 힘들어 치료가 불가능했지만, 김 교수는 내시경을 이용해 콧구멍으로 뇌에 접근해 종양을 떼어낸다. 이런 수술법을 시도한 것은 김 교수가 ‘국내 최초’다.
김 교수는 수술이 없을 때 부인과 심야영화를 자주 보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자상한 남편이기도하다. “결혼한 지 11년째인데 전공의 시절 남자친구가 한 달 동안 전화 한 번 안 해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지금까지도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핵의학과 교수)에게 늘 감사하고 있어요.”
“얼마 전 베트남 출신 불법 체류 부부 노동자인데, 부인이 생리를 못해 저를 찾아 왔어요. 뇌하수체 선종으로 밝혀졌지만, 다행히 혹이 작아 수술 없이 약만 처방했어요. 놀라운 것은 약을 쓴 지 6주 만에 임신에 성공한 거예요. 그러나 약은 꾸준히 복용해야 하는데 부부는 베트남으로 귀국해야 했고, 그곳에서도 약을 먹기 위해선 처방전이 필요한데 가난한 부부에게는 큰 부담이였죠. 그래서 제가 어떤 약을 복용해야 하는지 베트남 의사에게 편지를 썼어요. 그후 베트남에서 한 통의 감사 편지가 왔습니다. 아내가 약 잘 먹고, 건강한 아이도 출산했다구요. 이런 소식 들을 때마다 너무 즐겁습니다.”
김태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