봅슬레이는 가장 열악한 스포츠 종목 중 하나였다. 정식 썰매 트랙이 없어 아스팔트를 달리며 훈련을 해야 했다. 여름에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아스팔트 위에서 50도 넘는 지열과 고군분투했다. 썰매를 살 돈이 없어 중고 썰매나 대여 썰매를 끌었고, 정식 이동차량이 없어 코치의 개인 승용차로 훈련을 이어갔다 .
그러나 대한민국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은 오는 7일 열리는 소치 동계올림픽에 당당히 썰매를 내걸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하더니 사상 첫 동계올림픽 출전에 성공한 것.
그 뒤에는 묵묵히 비인기 종목을 지원한 국내 기업들이 있었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지난 2011년 봅슬레이ㆍ스켈리턴 경기연맹과 메인 스폰서 후원계약을 맺고 매년 3억원씩 지원해왔다. 그 덕분에 국가대표팀이 국내외 전지훈련을 다녀왔고, 1억원어치 썰매도 구입했다.
최근에는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아 불편이 크다”는 말을 전해듣고 훈련용 차량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우인터내셔널 이동희 부회장은 지난달 말 이용 봅슬레이 대표팀 감독과 선수단에게 응원메시지를 전달하고 “자신감 넘치는 질주를 기대한다”고 독려했다.
처음 올림픽에 출전하는 컬링 국가대표팀 뒤에도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가 있었다. 신세계백화점과 국민은행이다.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얼음판을 떠났던 선수들이 훈련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전용 훈련장도, 훈련장비도 없어 전전긍긍하던 이들이 중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전지훈련을 하며 자신감을 쌓아갔다. 스노보드 김호준과 모굴스키의 최재우는 CJ제일제당의 후원을 받고 있다. 해외 전지훈련을 지원하고, 외국인 전담 코치도 영입했다. 스노보드를 독학으로 익힌 김호준은 지난해 12월 스노보드 월드컵에 출전해 9위에 올랐다. 타고난 재능에 기업 후원이 더해져 하루가 다르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국가대표 루지 선수단을 후원하고 있다.
지금은 최고의 스타가 된 김연아도 한때 비인기 스포츠의 설움을 겪었다. 국민은행은 지난 2006년 아직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김연아를 광고 모델에 발탁하고 9년간 후원했다. 그 과정에서 김연아는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급부상했다.
1997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시작한 삼성의 빙상 종목 후원은 기업의 중장기 R&D 투자를 연상케 한다. 삼성이 빙상팀 해외 전지훈련과 코치 영입, 장학금 등 지원을 쏟아붓자 스타 선수들이 하나 둘 배출되기 시작했다. 올 소치 올림픽 최고 유망주인 이상화 선수도 실은 ‘삼성의 장학생’이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기업 후원은 ‘마케팅’ 차원에서 본다면 도박에 가깝다. 투자비용에 비해 높은 성적을 기록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후원하는 선수가 성공하면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성공스토리를 기업과 선수가 공유할 수 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스포츠 저변 확대라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worm@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