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거센 바람…뜨고 진 재계의 인물들
삼성그룹 20년전에 당긴 혁신의 고삐3분기 영업익 10조등 최고실적 화답
현대차도 글로벌 경기 침체속 ‘질주’
내우외환 KT는 ‘黃의 법칙’심기 분주
최태원 회장이어 동생까지 구속
조석래·현재현·이석채 등도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장기화되고 있는 경기 침체와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거세지고 있는 정치권발(發) 경제민주화 바람 속에서 재계는 어느 해보다 유난히 힘들고 춥게 올 한 해를 보냈다.
이 같은 어려움을 깨고 놀라운 성과를 창출해 영광 속에 우뚝 선 인사가 있는가 하면, 경영상 잘못된 판단까지 겹치면서 쇠락해 개인적인 굴욕을 겪거나 심지어 기업의 운명까지 어려운 지경으로 끌고 간 인사도 있었다. 올해를 돌아보며 개인적으로 흥망성쇠를 겪은 오너, 최고경영자(CEO) 등 재계 인사들을 정리해봤다.
▶ ‘신경영 20년’ 이건희 회장, 올해 최고 성적표=올해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재계 인사 중 한 사람은 단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다. 올해는 이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며 혁신을 주문했던 이 회장은 올해에는 “변화의 심장이 뛴다”며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다시 당긴 고삐는 실적으로 따라왔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매출 59조원, 영업이익 10조원이라는 사상 최고의 성적표를 받았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올해 최고 실적을 내며 성공적인 한 해를 보낼 전망이다. 현대차는 경기 불황 속에서도 지난달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지난해보다 6% 증가한 690만대를 팔았고, 이 같은 추세라면 올해 목표인 741만대를 넘어 750만대 이상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정 회장은 야심작인 ‘신형 제네시스’로 새로운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올해 재계의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다.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헌정 사상 첫 경제5단체와 여야 원내대표 회동자리를 만드는 데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황창규 KT 회장 내정자도 올해 유난히 돋보인 인사 중 하나다. 메모리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 만에 두 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을 2002년 주창해 삼성전자를 반도체 강자로 이끌었던 황 내정자는 KT의 중흥을 이끌 전략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이해진 네이버 의장은 은둔형 벤처 창업가에서 글로벌 모바일 메신저 성공으로 올해 화려하게 IT업계에 등장했다. 네이버의 메신저 ‘라인’은 가입자 3억명을 돌파하며 일약 3대 메신저로 부상했다.
▶ ‘영어의 몸’ 최태원 회장, 동생까지 구속 ‘시련’=올해 경제계에서 가장 많이 들려온 말은 “기업 못 해먹겠다”였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기조에 이어진 사정기관의 압박 속에 주요 그룹 총수들은 철창행을 면하지 못했거나 강도 높은 수사를 받으며 ‘구속위기”에 있다.
이 중 최태원 SK(주) 회장이 대표적이다. 2010년부터 이어진 검찰 수사 끝에 최 회장이 지난 1월 법정 구속된 후 SK그룹은 최 회장이 맡던 양대 축인 사회적 기업과 글로벌 경영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7월 “선지급을 지시했지만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사기를 당한 것일 뿐”이라고 증언을 번복했지만, 동생인 최재원 SK 부회장까지 구속되는 시련을 맞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재계 총수 중 박근혜정부에서 처음으로 구속 기소됐다. 이 회장은 총 2078억원을 배임ㆍ횡령ㆍ탈세한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됐다가 만성 신부전증 등에 따른 신장 이식 수술을 이유로 구속 집행 정지 결정을 받고 재판 중이다.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도 구속 직전까지 가며 올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현 회장은 동양이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간 이후 부적절한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발행과 계열사 간 자금거래 혐의 등으로 구속위기에 놓였다.
조 회장은 1997년 IMF 사태 이후 1조원대 손실을 숨기기 위해 분식회계를 이용, 1000억원대의 차명 재산을 운용하면서 법인세ㆍ양도세 탈루를 주도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지난 19일 구속영장이 기각됐지만, 건강 악화 속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이석채 전 KT 회장도 횡령ㆍ배임 혐의로 자택 압수 수색, 소환 등 고초를 겪은 끝에 중도 사임했다. 소환을 앞두고 건강 악화로 입원한 이 회장은 개인 비리 의혹 외에 일각에서 KT를 ‘낙하산(올래)’과 ‘원래(원래)’ 임직원으로 편을 갈랐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지난해 연임에 성공한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정권교체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임기가 약 1년6개월가량 남은 상태에서 자진 사퇴 의사 밝혔다. 지난 10월 세계철강협회장에 선임된 정 회장은 이제는 각종 단체직도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됐다.
자수성가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룹이 해체되거나 어려운 형편 속에서 재기를 노리는 기업인도 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계열사들이 자율 협약, 워크아웃, 매각 등으로 뿔뿔이 흩어지면서 사실상 그룹이 해체돼 지주사였던 (주)STX 대표만 맡고 있다. 하지만 (주)STX의 종합상사 전환을 통해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대표적 자수성가형 창업자인 박병엽 전 팬택 부회장은 실적 부진으로 지난 9월 자신이 일군 회사를 떠났다. 임직원 800명이 무급 휴직 조치를 받은 상황에서 책임을 진 것이다. 그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새 일을 찾겠다”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산업부/k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