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장이라는 직함은 누가 임명한 자리도 아니고, 남이 인정해 주는 직책도 아닙니다. 그냥 내가 좋아 그렇게 이름 붙였습니다. 하지만 문화마을을 조금씩 가꾸어 나가는 재미는 쏠쏠합니다.”
한 중소기업체 CEO였던 한홍섭 회장이 문화사업가로 변신해 프랑스 문화마을 ‘쁘띠프랑스’를 만든 이야기는 한 사람의 순수한 열정과 의지가 어떠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
한홍섭 회장은 문화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평생 니스를 생산하는 페인트 사업만 해왔다. 20대 초반부터 사업을 시작해 제법 큰 중소기업으로 키웠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 업무차 떠난 파리 출장에서 찾았던 피카소 미술 전시장에서 한 생각이 떠올랐다. 관람객들의 긴 행렬을 보면서 프랑스 미술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이 하고싶어졌다. 프랑스 문화에 흠뻑 빠진 그는 구체적인 검토 과정에서 생각이 바뀌어 프랑스 생활문화를 전시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부족한 문화와 경영에 대한 지식은 대학원 최고위과정에 등록해 가며 보충했다.
“프랑스의 작은 시골마을을 한국에 옮겨 놓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내가 보고 느낀 프랑스 시골마을의 아름다움을 한국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어요. 국제화 시대에 가치있고 보람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죠.”
그는 20년간의 준비 끝에 2008년 7월 경기도 가평에 ‘쁘띠프랑스’의 문을 열었다. 지금까지 20년간 99차례 프랑스를 찾아 가 물건들을 사 모았다. 프랑스 벼룩시장을 샅샅이 뒤졌다. 유럽 인형, 프랑스 전통 인형 ‘기뇰’, 오르골, 골동품 등 어느 것 하나 쉽게 들여온 것이 없다. 직접 발품을 팔아 고르고 골라서 구해 온 작품들이다. 프랑스의 오래된 시골 집을 사 해체해 들여와 다시 조립하는 어려운 과정도 거쳤다.
“프랑스 고택을 구입하러 다니는 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고택 주인에게 취지를 설명했더니 벌컥 화를 내면서 돌아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하지만 제 생각을 이해해 주는 프랑스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렇게 해서 150년 된 목조가옥을 쁘띠프랑스에 지을 수 있었어요. 프랑스 전통가옥을 목재와 기와, 바닥까지 모두 해체해서 한국으로 옮겨 와 원형 그대로 만든 집이에요.”
건축물 외에도 쁘띠프랑스의 1000여가지 전시품 중 대다수가 프랑스인의 숨결과 손때가 묻어 있는 실제의 것들이라 생동감이 살아 있다.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그림처럼 사진이 잘 나오는 것도 이곳이 실제의 유럽마을이기 때문이다. 한 회장은 유럽의 주택들을 흉내 낸 테마파크가 아닌 실제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마을 분위기가 나온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고 있다. 한 해 60만명 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고,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4만5000여명에서 올해는 9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적 소양은 책이나 설명만으로는 채우기에 부족합니다. 체험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프랑스까지 직접 날아가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는 사람들이 쁘띠프랑스에서 작은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아이들의 가슴 속에 프랑스에 대한 작은 호기심의 불을 피워 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언젠가 글로벌 인재로 자라날 수 있는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한 회장은 쁘띠프랑스에서는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재미를 누릴 것을 조언했다. ‘어린 왕자’가 자신의 소행성을 길들이듯 그가 물건 하나하나, 풀 한 포기에도 정성과 시간을 쏟는 이유다. 한 회장이 쁘띠프랑스 내에 ‘어린 왕자’를 쓴 작가 생텍쥐페리 기념관을 설치한 것, 생텍쥐페리재단을 끈질기게 설득해 생텍쥐페리 유족으로부터 직접 기증받은 유품들( ‘어린왕자’의 원화, 생텍쥐페리가 입었던 코트와 비옷, 팔찌, 편지)을 전시한 것도 진짜 프랑스 문화를 전하기 위해서다. 그는 특히 ‘어린 왕자’에 나오는 ‘별들이 아름다운 건, 눈에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이야’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들인 시간 때문이야’와 같은 구절을 좋아한다고 했다.
“쁘띠프랑스는 ‘작은 소행성’입니다. 거대 자본이 만든 대형 테마파크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로 작습니다. 하지만 이 소행성은 대규모 테마파크처럼 시간에 쫓기듯 돌아봐서는 안 됩니다. 작은 공간에서는 빨리 뛰어봐야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만 앞당길 뿐입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가슴이 뛰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국적인 복장을 한 마리오네트 인형 소리도 들을 수 있고, 1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 천사의 오르골 소리도 감상할 수 있어요. 여기는 말초신경을 자극할 만한 감각적인 요소들은 하나도 없어요. 감각적인 것들을 잠재워야 내면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회장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 상상력을 키우고 각박한 삶을 떠나 예쁘고 새롭고 교육적인 곳에서 마음에 쉼표를 찍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쁘띠프랑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철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한 회장이 40여년간 순조롭게 해 오던 사업을 정리하고 생소한 문화사업에 뛰어든 이유를 이해할 만했다. 그는 쁘띠프랑스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에서 좋은 씨앗 하나가 싱그러운 새싹을 틔우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며 제2의 인생을 사는 그의 삶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쁘띠프랑스 자체가 한 회장의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는 한홍섭 회장. 그의 말을 듣고 청평호반 언덕 위의 예쁜 소행성 ‘쁘띠프랑스’를 다시 둘러보니 좀 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