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지난해 대선이후 계속되고 있는 여야간의 대결정국을 해소하는데는 크게 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오히려 기름을 부은 형국이라는 의견도 많다. 그동안 야권이 시정연설에서 꼭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던 사안들에 대해 침묵, 또는 그동안의 입장을 되풀이해 민주당의 강력한 반발만 불러왔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여야합의=국민의 뜻’이라는 원칙을 강조했지만, 이 역시 결국 다시 공을 국회로 그대로 넘긴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반응이다. 민주당은 시정연설 직후 김한길 대표 등 지도부와 소속의원이 참가한 가운데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어 시정연설내용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화답’은 없고, ‘확인’만=이번 시정연설에 대한 민주당 최우선 요구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와 수사를 위한 특검도입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사과’에는 “의혹을 추호도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특검 요구에는 “정부의 의지와 사법부의 판단을 믿고 기다려 주실 것을 호소드린다”고 피해갔다. 사과와 특검에 대한 분명한 거부다. 국정원 개혁도 “국회에서 하시라”가 아니라 “정부안을 국회가 검토해달라”고만 했다.
시정연설로 박 대통령의 뜻이 분명해짐에 따라 특검과 특위를 모두 거부해 온 새누리당의 입장변화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
민주당도 여론 부담 탓에 당장 예산안과 법안처리를 특검 등과 연계하지는 않겠지만, 대여투쟁의 전의는 더욱 다졌다. 당 원내지도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특검과 특위는 계속 요구하던 그대이고, 예산은 예산이고 입법은 입법”이라며 “국정원 자체개혁안은 국회에 보낼 필요없이 국정원이 시행하면 되고, 국정원 전반의 제도적, 입법적인 개혁은 국회서 논의될 사안”이라고 잘라 말했다.
민주당은 이날 규탄집회에서 황교안 법무장관, 남재준 국정원장, 박승춘 국가보훈청장의 해임도 요구하면서 향후 강도높은 충돌을 예고했다. 민주당은 시정연설에 앞서 의원총회를 가진 데 이어, 이날 오후 최고위원회에서 시정연설 이후 정국 대응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감사원장 임명동의 직권상정은 어려울 듯=박 대통령의 연설이 여야 대결국면 해소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워졌지만, 그나마 감사원장 임명동의안의 여당 단독처리 가능성은 낮출 것으로 보인다.
강창희 국회의장은 15일 “야당이 계속 처리를 거부할 경우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시정 연설에서 “정부는 여야 어느 한쪽의 의견이나 개인적인 의견에 따라 움직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강조한 여야합의를 강 의장이 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자칫 동의안 단독처리가 이뤄질 경우 박근혜정부 잔여임기 4년간 나라살림의 방향을 가를 예산안과 법안 처리에서의 민주당 협조는 아예 물 건너 갈 수도 있다. 다만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될 경우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후보자의 ‘사퇴’ 여부를 둔 여야 공방도 더욱 격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경환 원내대표가 주도하는 새누리당 내 국회선진화법 개정 움직임도 일단은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연설에서 여러차례 여야합의를 강조했고, 의원 신분이던 지난 해에는 국회선진화법 개정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홍길용 기자/kyh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