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의 고도성장 시대는 저무는 것인가.
중국서 터키, 브라질까지 성장률 둔화가 가시화하는 가운데 신흥국 성장이 최고점에 다달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신흥국 성장률이 2010년 이래 3% 포인트 둔화해 분기 기준 연율 성장률이 5%로 추락했다”며 “단기간내 고성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신흥국 성장세 둔화가 뉴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개도국의 행진이 잠시 숨고르기를 하는 것인지 이론(異論)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신흥국 고성장 더 간다=신흥국 경제는 지난 10년 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대내적으로는 더 높은 생산성을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나서는 인구가 늘면서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됐고, 대외적으로는 세계 경기 침체 속에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뿌려놓은 유동성의 수혜를 톡톡히 봤다.
실제로 2000~2012년사이 신흥시장은 연평균 6%씩 성장했다. 같은 기간 선진국이 2% 성장에 그친 것에 비하면 큰 폭의 성장이다.
이를 반영하듯 신흥시장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0년 내 그 비율이 3분의 2까지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엇보다 신흥시장 낙관론자들은 이들 국가의 경기부양 노력을 높이 사고 있다. 스페인 은행인 방코 빌바오 비즈카야 아르젠타리아(BBVA)의 아시아 담당 이코노미스트 스테판 슈바르츠는 “인도 등 신흥국 경제는 도시화와 함께 되살아날 것”이라며 “바로 그 생산성 향상이 가져오는 따라잡기가 고도 성장을 복구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IMF는 최근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중국의 2018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7%로, 지난 15년간 보였던 연평균 9.6% 성장률보다 낮춰잡으면서도 “최근의 하락세는 환영할 만하다”며 “그것은 신흥시장이 자산거품을 일으키지 않고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산업화 단물 다 빠졌다=반면 개도국의 산업화는 이미 결실을 볼 만큼 봤다는 비관론도 나온다. 지난 2년 전부터 고도성장에 균열을 보여온 대부분의 신흥국이 이제 ‘용량 제약(capacity constraints)’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인구는 고령화돼 가고, 교육 수준은 여전히 열악하다는 점도 단점으로 지적됐다. 뿐만 아니라 신흥국에서 자금 엑소더스(대탈출)를 몰고 올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10년 간 지속된 원자재 슈퍼 사이클(장기간 가격 상승)의 종언은 신흥시장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의 앤더스 애스룬드 선임 연구원은 “(신흥국의) 산업화 진보는 이제 끝났다”며 “부자 나라든, 가난한 나라든 대부분 국가는 1980년~2000년 사이 보였던 성장률 3.5%수준으로 회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관론자의 대표격인 애스룬드는 신흥국의 면면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러시아와 브라질은 고임금에 시달리는 한편, 이들 국가는 최첨단 제품에서 선진국과 경쟁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의 투자주도 성장 모델은 공장 가동이 둔화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동력을 상실했다”며 “많은 신흥국들은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고 보호무역주의도 상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신흥국으로의) 수렴은 없거나, 거의 없는 앞으로의 10년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서방국가의 경제가 살아나고 있음에도 신흥국의 수출 주문이 저조한 점도 이같은 비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10월 중국의 제조업 구매자관리지수(PMI)는 전반적으로 상승했지만, 수출 주문은 50.7에서 50.4로 떨어졌다. 이는 미국 등 서방 소비자들이 신용 위기에 노출을 줄이고 저축 늘리면서, 아시아산(産) 물건 소비를 늘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글로벌 굴뚝’을 자처했던 중국은 임금인상과 위안화 강세 영향으로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해외시장에서의 제품 매력을 반감시키고 있다.
이에 대해 WSJ은 ”신흥국들이 장기 침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 점검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중국은 비생산적인 국영기업 확장에 의존하기 보다 국내 소비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터키ㆍ인도는 국내 소비를 줄이고 국내 저축과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예선 기자/che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