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디자인포럼’ 지상중계
이제 제조업 아닌 ‘문화’를 판매하는 시대한국 제품 중심이던 디자인 영감 틀 깨야
기와·단청등 한국디자인은 미래 아닌 현재
‘K디자인’ 한계 넘어 국제적 보편성 갖춰야
홀로 존재하지않고 소통하고 나눠야 성공적
사회적책임 더한 옳은 디자인으로 발상전환
‘혁신의 아이콘’ 팀 브라운, ‘건축계의 거장’ 이토 도요, 세계적인 산업디자이너 스테파노 지오반노니, ‘로고 디자인의 명망가’ 매기 맥냅, ‘인테리어디자인의 차세대 리더’ 게빈 휴즈, 레이디 가가의 의상디자이너 장 샤를르 드 카스텔바작, ‘세트디자인업계의 신성(晨星)’ 게리 카드,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돈태와 오준식.
세계 디자인업계를 이끄는 9명의 거장.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헤럴드디자인포럼’ 강연에 오른 이들 9명의 한마디 한마디는 세계적인 명성만큼이나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줬다.
디자인에서 출발한 그들의 화두는 다시 ‘디자인(DㆍEㆍSㆍIㆍGㆍN)’으로 귀결된다. ‘파괴(Destruction)ㆍ진화(Evolution)ㆍ시야(Sight)ㆍ영감(Inspiration)ㆍ글로벌(Globalization)ㆍ소통(Networking)’. 9명의 거장이 설파하는 미래 디자인의 6대 화두다.
과거로부터 상식처럼 여겨진 디자인을 ‘파괴’하고, 사회적 책임을 더한 디자인으로 ‘진화’하라고 조언했다. 한발 앞서가는 ‘시야’로 디자인의 미래를 고민하고, 끊임없이 ‘영감’을 찾아다니며,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디자인만이 생존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디자인 역시 미래가 요구하는 디자인이다. 9명의 거장이 한국 사회에 던지는 디자인의 이정표다.
▶과거 디자인을 파괴(Destruction)하라=이토 도요는 20세기 건축디자인과 21세기 건축디자인이 명확하게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세기 건축이 외부와의 단절, 기능을 강조했다면 21세기 건축은 개방과 교류를 중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과거의 건축디자인을 답습해선 미래의 요구에 부응할 수 없다”고 했다.
산업디자이너 스테파노 지오반노니는 디자인기업 알레시와 협업했던 경험을 예로 들었다. 그는 “원래 알레시는 전통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기업이었으나 새롭게 디자인을 적용하면서 이런 상식을 깨뜨렸다”고 회상했다. 이어 “쟁반 끝 부분을 다듬어 사람 형태의 쟁반을 만들고, 금속 소재 위주의 알레시 디자인에 플라스틱을 적용했다. 반발도 컸지만, 결국 큰 성공을 거뒀다”고 했다.
오준식 아모레퍼시픽 크리에이티브디렉터는 과거 디자인이 자동차나 철강 산업 등에 중점을 뒀다면, 이젠 헬스나 패션, 미용 등 새로운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조업이 아닌 문화를 판매하는 영역에 디자인 역량을 모아야 한다. 한국은 여전히 너무 많은 디자인 영감이 제품 중심으로 돼 있다. 이런 틀을 깨야 한다”고 지적했다.
▶책임으로 진화(evolution)하라=이제 디자인에 사회적 책임을 더하는 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맥냅디자인의 대표 매기 맥냅은 강연을 통해 비영리 기업 스완송의 로고를 디자인한 경험을 소개했다. 스완송은 말기 환자 등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비영리 기업이다. 그는 “홀로 외롭게 죽음을 맞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주고자 로고에 나선형 구조를 넣었다”며 “마치 은하계처럼 모두가 서로 힘이 된다는 느낌을 넣으려 했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오 디렉터는 “이젠 ‘옳은 디자인(right design)’의 시대”라고 단언했다. 그는 “옳은 이야기가 아름답게 평가받는 시대가 왔다. 우리가 ‘옳은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곳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했다.
‘헤럴드디자인위크2013’ 행사 이틀째인 지난 8일‘ 헤럴드디자인포럼’에서 글로벌 디자이너 이토 도요가 1000여명의 청중 앞에서 미래 디자인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다. [김명섭 기자/msiron@heraldcorp.com] |
▶시야(sight)를 앞서보라=남들보다 앞서가는 디자인은 고객의 요구를 이끌 수 있는 디자인이다. 고객의 요구에 맞춘 디자인을 넘어, 능동적으로 고객의 잠재 욕구를 끌어낼 수 있는 디자인이다. 이돈태 탠저린 공동 대표는 이를 ‘포어사이트(foresight)’라 강조하며, 이는 디자이너의 특권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때로는 고객이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모르기 때문에 고객의 목소리가 모두 정답만은 아니다”며 “예지력(foresight)는 디자이너만의 특권이다. 예지력을 갖고 디자이너는 고객이 원하는 모든 걸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수치와 자료만 믿어선 훌륭한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 시야를 넓히고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선견지명과 통찰력에 디자이너는 물론 기업 경영자나 디자인 학도들이 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영감(Inspiration)을 찾으라=삶의 곳곳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어내는 것 역시 이들 9명의 거장이 한목소리로 강조한 대목이다. 장 샤를르 드 카스텔바작은 강연 도중 머리카락 한 가닥을 관중에게 보여주며 “정말 보기 힘든 걸 들고 나왔다. 바로 피카소의 머리카락”이라고 했다. 세계적인 화가 피카소의 머리카락이란 말에 관중은 술렁거렸다. 잠시 후 그는 “사실 내 머리카락이다. 피카소의 머리카락이라고 들은 순간, 여러분은 수많은 상상을 했을 것”이라며 “그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다. 이런 감정을 일상 속에서 항상 느껴야 한다”고 했다.
스테파노 지오반노니는 “뚜껑을 열면 이쑤시개가 나오는 토끼 모양의 보관함, 계란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컵 등도 모두 일상 속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라고 했다. 게리 카드도 “어린 시절부터 공상만화와 그림을 그리며 상상하길 좋아했다. 놀이를 통해 영감을 얻곤 한다”고 했다.
▶글로벌 가치(Globalization)를 더하라=이 대표는 디자인에 국가주의를 더하는 흐름을 경계했다. 그는 “요즘 ‘K(KOREA) 디자인’을 많이 얘기하는데 디자인은 국제적 보편성을 갖춰야 한다”며 “굳이 ‘K 디자인’이 필요한 게 아니다. 디자인의 본질은 전 세계에서 통해야 한다”고 했다.
오 디렉터 역시 “이제 디자인은 세계를 상대로 도전해야 한다. 기와ㆍ단청ㆍ한복 등을 한국 디자인의 유일한 미래로 봐선 안 된다”고 했다.
▶소통하고 네크워킹(Networking)하라=홀로 존재하지 않고, 세상과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 9명의 거장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디자인의 특권이자 의무다. 매기 맥냅 대표는 “성공적인 로고 디자인은 기업과 고객의 관계, 연결을 잘 드러내야 한다”며 “세상 속 의미를 부여하고 관계를 담아내는 게 성공적인 디자인의 핵심”이라고 했다.
카스텔바작은 “언제나 ‘만남’에서부터 디자인이 시작된다. 배우, 팝아트, 담배 케이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디자인은 서로 다른 업종을 연결하는 고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오 디렉터는 “디자인을 100m 달리기가 아닌 릴레이 경주로 봐야 한다”며 “홀로 달리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 달리는 게 디자인의 미래다. 한국 디자이너도 협동심을 발휘해 세계 디자인업계에 더욱 명성을 떨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수 기자/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