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한석희 기자] 지난 1997년 외환위기의 시발점이 됐던 아세안 지역이 미국과 중국, 일본 등 3국 트라이앵글의 치열한 각축장이 되고 있다. 아세안 지역이 미ㆍ중ㆍ일 등 3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교착점이자, 세계경제의 성장을 견인할 ‘포스트 브릭스’로 떠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아세안을 자기편으로 만드냐에 따라 국제정세 뿐 아니라 세계경제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 이어 아세안+3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촉각도 여기에 맞춰져 있다.
박 대통령은 7일 APEC 정상회의 첫 번째 세션에서 ‘다자 무역체제 강화를 위한 APEC의 역할'을 주제로 선도 발언에 나선다. 또 오는 9일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한ㆍ아세안 정상회의에선 한국과 아세안 국가들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 내실화에 주력하고, 10일 아세안+3 정상회담에선 ’동아시아경제공동체' 달성을 위한 역내 국가들의 협력 필요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이와관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이 미국의 출구전략에 따른 선진국과 신흥국의 이해관계를 중재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면, 이번 순방에선 미중일 3국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아세안 지역에서의 교두보를 확보해 미중일 3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는 한국의 외교력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세안 지역이 이처럼 한ㆍ미ㆍ일ㆍ중 4국의 눈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최근 이 지역이 국제정세 뿐 아니라 지역경제통합의 핵심변수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우선 ‘아시아 회귀 정책’을 본궤도에 올려 놓으려고 하는 미국은 아세안 국가들을 파트너 삼아 중국 포위작전을 펼치고 있고, 센카쿠 열도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 확보와 당위성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도전에 직면한 중국으로선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해결하면서 아세안 지역에서의 확고한 위치를 점해야 하는 현실적 문제에 직면한 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APEC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3일(현지시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국회에서 ‘손을 잡고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의 운명공동체를 건설하자’는 제목의 연설을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면서 사회제도와 발전의 길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며 “이익을 따지려면 천하에 이익이 될 것인지를 따져야 마땅하다(計利當計天下利)”는 문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미 연방정부의 잠정폐쇄(셧다운)으로 APEC 정상회담 및 아세안 지역 순방을 포기한 것과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이 5일 “오바마 대통령이 개별 아시아 국가 방문은 포기하더라도 APEC 정상회의에는 참석했어야 했다”며 “순방 취소로 아시아 회귀 정책이 3가지 외교적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고 분석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분석이다.
/hanimomo@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