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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도 늙어간다
경제 불확실성 증폭 투자주저속 안전자산만 선호…돈흐름 역동성 상실 ‘돈맥경화’ 심화
대한민국의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 자본도 늙어가고 있다.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최근 고액 자산을 보유한 중ㆍ장년층들은 안전한 투자처를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기업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경제여건 속에서 투자 지갑 열기를 주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과거 고도 성장기에 굽이쳤던 돈의 흐름이 역동성을 잃은 지 오래고, 자금 혈관에 이상이 생기는 이른바 ‘돈맥경화(credit crunch)’도 심화되고 있다. 신용경색의 징후가 나타나면서 우리나라도 일본식 디플레이션(물가하락을 동반한 경기침체)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일본 경제가 수년 동안 고통을 받고 있는 원인을 ‘노노상속(老老相續)’에서 찾는 시각이 있다. 사회가 고령화될수록 부모 사망 뒤 유산을 다시 은퇴한 노령 자녀에게 물려주게 되기 때문에 정작 돈을 써줘야 할 이들이 소비ㆍ투자에 의욕적으로 나서지 않게 되고 결국 금융 활력에 저해가 된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역시 자산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노령세대들이 늘어남에 따라 주식ㆍ채권ㆍ파생상품 등 투자성 금융상품에는 참여율이 떨어지고, 은행 예ㆍ적금 등 저리라도 안전한 재테크를 선호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은행 예금은 지난 6월 사상 처음으로 100조원을 돌파했다. 수신금리가 1~2% 수준의 초저금리를 기록하고 있지만, 섣불리 모험을 할 바엔 은행 계좌에 묵혀두는 개인투자자들이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기업들도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투자에 선뜻 ‘패기’를 부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각에선 기업들이 벌어놓은 돈을 재투자하지 않고 곳간에 자물쇠를 걸어두고 있단 비판도 있지만, 기업들은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항변한다.

경기 여건이 확연한 개선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경제민주화 논의를 중심으로 정부의 규제가 촘촘해지면서 마땅한 투자처 찾기 힘들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예상 소비처가 없는 상황에서 공장이나 생산설비만 무턱대고 늘릴 순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최근 기업 총수들이 검찰수사 등 오너 리스크도 투자 위축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투자 위축으로 기업예금은 지난 2분기 말 313조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서경원 기자/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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