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매우 개연성이 희박한,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엄청난 충격을 몰고오는 현상을 ‘블랙스완’이라는 신조어로 설명해 반향을 일으켰던 나심 탈레브가 이번엔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들고 다시 찾아왔다.
‘안티프래질’은 ‘깨지기 쉬운’을 의미하는 프래질에 반대되는 의미이지만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작위성, 스트레스 등 외부의 변화에 대한 적응력, 회복력이라 할 수 있다. 탈레브가 진단한 세계는 무작위성, 가변성, 불확실성, 무질서의 상태다. 즉 블랙스완이 지배하고 있어 언제 어떤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가령 9ㆍ11테러나 일본 원전 사고처럼 전혀 예측불가능하다. 아무리 정교한 계산 방법을 가지고 있어도 충격의 위험과 확률은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예기치 못한 사태는 여기저기 잠복해 있다.
그렇다면 최악의 사태가 오기 전에 최소한 이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는 걸까.
여기에 탈레브는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의 잣대를 제공한다.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은 확률이 작아 모델 오차가 훨씬 커지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반면, 프래질 혹은 안티프래질은 기업, 산업, 정치, 체제처럼 대상의 현재 특징을 나타내기 때문에 탐지가 가능하다. 가령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A보다 B가 더 프래질하거나 안티프래질하다는 비교가 가능하다.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어떤 은행이 다른 은행보다 ‘더 프래질하다’고 예상할 수 있고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면 군사독재 정권이 상향식 정치 체제를 가진 스위스에 비해 더 프래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식이다.
따라서 탈레브는 미래의 리스크를 예측하는 대신 현재의 프래질과 안티프래질을 탐지해 전략을 짜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한다. 무작위적인 사건이나 충격에서 손실보다 이익이 더 크면 안티프래질하고, 그 반대는 프래질한 것이다.
그를 예언자 반열에 오르게 한 2003년 페니메이 건을 상기하면 짐작이 가능하다. 탈레브는 당시 페니메이가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뉴욕타임스에 공개했다. 당시 은행 시스템과 기관들의 프래질을 탐지한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2008년 페니메이는 결국 구제금융을 받는 꼴이 됐다
탈레브는 위기에 더 강해지는 안티프래질을 확보하는 전략을 소개한다. 이른바 ‘바벨 전략’이다. 떨어져 있는 양 극단의 조합을 추구하고 중간을 피하는 것이다.
가령 금융투자를 한다면 재산의 90%는 인플레이션으로부터 보호받는 안전자산으로 보유하고 10%를 가장 위험한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10% 이상은 잃지 않는다. 반면 전 재산을 중간 정도의 리스크를 갖는 주식에 투자했다면 운이 나쁘면 전 재산을 날리게 된다.
탈레브는 안티프래질을 살아남은 모든 자연적 시스템 혹은 복잡계의 특징으로 제시한다. 즉 가변성, 무작위성, 스트레스를 통해 살아남는 강한 체질을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시스템에서 가변성과 무작위성을 제거하면서 시스템이 약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탈레브는 대기업에게 주는 구제금융이 안티프래질에 역행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는 대기업의 리스크가 다른 기업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잆다는 점을 근거로 대기업을 구제해야 한다고 변명하지만, 누구도 실패하지 않도록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마저 몰락시키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실패는 시스템을 강화시킨다는 역설이다.
탈레브의 분석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있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의 정부 개입과 사회 정책은 약한 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기존 세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것이다. 탈레브는 이를 ‘프래질의 이전’이라고 이름붙인다. 타인과 사회에 프래질을 이전해 자신은 안티프래질해지는 예는 얼마든지 많다. 은행은 유례없이 돈을 잃고 정부와 납세자들은 빚더미에 올라앉았어도 경영진은 전혀 손실을 입지 않는다. 탈레브는 7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책에서 깨지기 쉬운 구조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하고 일상생활과 건강, 경제활동과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변화와 충격에 부딪힐 때 더욱 성장하는 안티프래질한 체질을 갖추도록 친절하게 조언한다. 생소한 안티프래질이란 개념을 이해하려면 찬찬한 일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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