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출입 1년반. 거칠게 잡아 가장 많이 썼던 주제는 ‘계파갈등’이었습니다. 지난해 총선을 앞둔 시점, 당의 가장 큰 권력인 ‘공천권’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당내 특정 계파가 이를 쥐고 흔든다는 불만이 쏟아졌습니다. ‘누가 누구를 낙점했고, 떨어진 인사는 특정 정파의 견제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왔습니다.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누가 당의 대선 후보가 되느냐는 상대당의 경쟁자를 눌러야 하는 본선 경쟁보다 치열했습니다. 여기서도 ‘계파갈등’은 당내 갈등의 핵을 이뤘었죠. ‘경선룰 합의’도 쉽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대선 후에는 ‘대선 패배 책임론’이 대두됐고, ‘책임이 있다’ ‘책임이 없다’며 편을 갈라 치열하게도 싸웠습니다.
그러나 김한길 당대표의 ‘장외투쟁’ 50일이 다되가는 시점인 2013년 9월 당 내 ‘고질’이었던 계파갈등이란 단어가 민주당 내에서 사라졌습니다. 언론도 ‘계파’를 구분해 보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세부적으로 따지면 다르겠지만, 우선은 큰 틀에서 국가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이라는 대형 ‘국기문란 사건’에 대한 문제인식이 의원들 사이 확실히 공유됐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민주당 주최로 열린 무상보육.취득세 인하 등 지방재정 위기극복을 위한 긴금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서 김한길 대표가 한 당직자에게 휴대폰을 건네 받고 있다있다./안훈기자 rosedale@ 2013.09.17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민주당 주최로 열린 무상보육.취득세 인하 등 지방재정 위기극복을 위한 긴금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서 김한길 대표가 한 당직자에게 휴대폰을 건네 받고 있다있다./안훈기자 rosedale@ 2013.09.17 |
당 대표의 ‘영(令)’도 확실히 서는 모습입니다. 예컨데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요구서가 국회에 제출됐을 때, 민주당 내에선 적지 않은 의원들이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뜻을 같이 하던 의원들 사이 ‘반대표 모의’까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러나 실제 투표 결과 사실상 반대(기권·반대·무효)는 31표였습니다. 언론에서는 ‘예상보다 반대표가 많았다’는 평가가 나왔지만, 최악의 경우 ‘부결될 수도 있다’던 우려에 비해 반대표가 적었다는 것이 민주당 지도부의 평가입니다.
한 대변인이 ‘새누리당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란 소문이 돈다’는 논평을 낸 것도 사실 민주당 내에서 반대표를 던질 의원들을 상대로 한 ‘내부단속용’이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지난해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이 부결됐을 때 민주당 의원 상당수가 전략적으로 짜고 ‘꼼수’를 썼다”고 했습니다. “자당 의원을 보호하는 여당” 비판을 만들기 위해 ‘작전’을 짰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석기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것과 관련해 민주당 관계자는 “당대표의 ‘영(令)’이 최근 5년사이 이렇게 일사분란하게 먹혀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원인은 일단 김한길 대표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김 대표는 지난 8월 1일부터 장외투쟁을 벌여왔습니다. 8월 28일부터는 노숙투쟁에 돌입했습니다. 흰머리에 흰수염까지 덥수룩한 그의 모습은 그 자신도 밝혔 듯 ‘노숙자’로 보입니다.
김 대표의 달라진 위상은 ‘3자 회동’ 직후 열린 긴급 의원총회에서도 확인됐습니다. 16일 오후 6시께 본청 246호실에 김 대표가 등장하자 의원들 다수가 박수를 쳤습니다. 계파나 회동 성과와 관계 없이 당대표에게 던지는 ‘격려’의 의미가 짙었습니다. 마무리 발언 후 김 대표가 퇴장할 때에도 의원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김 대표는 지난 ‘5·4 전당대회’ 경선과정에서 “‘가장 인기 없는 당대표’, ‘가장 욕 많이 먹는 당대표’가 돼도 좋다“며 본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김 대표의 현재 모습은 민주당 출입 이후 1년반 동안 봤던 그 어떤 당대표보다 더 ‘인기 있는’, ‘결단력 있는’ 대표로 평가되는 것 같습니다.
‘노숙 투쟁’이 시작된 지 1주일쯤 지났을 무렵. 당 대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한 민주당 출입 기자가 “대표님 격려 방문이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고,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10여명의 기자들이 김 대표가 머물고 있는 서울 광장 ‘천막 당사’를 찾았습니다. 밤 10시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김 대표는 ‘아버지 생각 많이 나시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그 엄혹했던 시절에 투쟁을 벌였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나는 정말 편안하게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고 했습니다. 이어 그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다짐을 합니다.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돼야 겠다는 생각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김 대표의 아버지는 당산 김철 선생으로 지난 1970년대 통일사회당 당수였습니다. 지난 13일에는 김 선생에 대한 긴급조치 위반 혐의가 재심에서 최종 ‘무죄’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장외 투쟁 전의 민주당과, 장외 투쟁 후의 민주당은 확연히 바뀌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민주당의 장외 투쟁이 옳으냐, 그르냐 또는 민주당이 국회를 버려두고 장 바깥에만 있는 것이 옳으냐 등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당 의원들의 말처럼 ‘민주당이 달라졌다’는 평가인 것 같습니다.
홍석희 기자 hong@heraldcorp.com
민주당의 장외투쟁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세다. 하지만 장외투쟁 50여일이 지나면서 계파갈등은 잠잠해지고 김한길 대표의 리더십이 강화됐다는게 내부 평가다. 지난 17일 무상보육.취득세 인하 등 지방재정 위기극복을 위한 긴급 시도지사 정책협의회에 참석한 김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 안훈기자 rosedale@ 2013.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