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을 넘긴 작가 서영은이 돈키호테를 찾아 나섰다. ‘돈키호테, 부딪혔다, 날았다’(비채)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40일간 걸어낸 뒤 그의 또 다른 도전이다.
평소 문학은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한다고 여겨 온 그에게 돈키호테는 그런 생각에 딱 들어맞는 소설이었다.
책은 출판사 편집장과 박사 출신 J와 동행하며 라만차 돈키호테의 길을 따라가는 구성방식을 따르고 있다. 작가는 여정에서 동행자들에게 틈 날 때마다 돈키호테를 읽어준다. 일행들이 달가워하지 않지만 붙잡아 앉혀 읽어주는 수고로움을 통해 그는 문학이 문학다워야함을 역설한다. “눈에 의지해서 정보나 다른 어떤 분야에서 짜집기한 소설이 아닌,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문학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거기엔 제대로 된 텍스트 ‘돈키호테’를 읽자는 뜻도 담고 있다. 그저 허무맹랑한 4차원 모험담이 아니란 얘기다. 그는 “세계 문학의 귀퉁이에서 우리는 만화로 접한 걸 마치 텍스트를 읽은 것으로 여기면서 제대로 돈키호테를 짚지 않고 성장한 것 같다”고 말한다.
불행한 세리(稅吏) 세르반테스의 삶과 한때 시골귀족이었다가 새로운 영웅으로 탄생한 돈키호테, 거기에 작가의 삶이 보태져 두터운 층을 이루며 진행되는 여정은 한 곳 한 곳을 오래 되새김하게 한다.
첫발을 뗀 마드리드에서 세르반테스 기념관이 있는 알칼라 데 에나레스로, “저기를 보아라, 산초 판사야, 서른 명이 좀 넘는 거인들이 있지 않느냐!”는 돈키호테의 외침이 들리는 듯한 콘수에그라의 풍차, 세르반테스가 세례를 받았다는 산타 마리아 라 마요르 교회를 거쳐 돈키호테가 4차원의 세계를 경험한 몬테시노스동굴 등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실재하는 돈키호테와 만나는 느낌이다.
작가는 그런 실재감을 바로 산초와 돈키호테라는 두 인물의 전형성에서 찾는다. 두 유형은 우리의 삶에서 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특히 돈키호테가 높이 치켜든 창에 주목한다. 그는 언젠가 살라만카의 한 가게 앞을 지나가다 창을 높이 쳐든 미니어처를 보고 그 창이 자신의 심장을 겨누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일어나라, 깨어나라, 삶에 부딪혀 날아라. 심장이 찔리면 상처를 입을 뿐 우리 정신은 높이 날 것이다”는 메시지였다. .
그는 돈키호테가 겨눈 창 너머가 끝없는 황량한 벌판이라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그 속에서 창을 높이 들고 세상 너머 모두를 아우르는 불멸의 가치를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다.
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의 삶 역시 그의 생애에서 안식과 휴식은 없었다. 그는 아픈 몸에도 레판토 해전에 출정했다가 부상당해 외팔이 신세가 되고, 해적에게 납치돼 4년간 노예생활을 한다. 귀국했을 때엔 국가는 이미 그의 헌신을 사회적으로 보상해 줄 처지가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영국과 스페인 전쟁 때 군수물자를 대주는 일을 하다가 화형당할 처지까지 몰린다.
작가는 “소설 돈키호테가 감옥에서 시작됐다고 하지만, 그가 물자를 대기 위해 황량한 들판을 가로지르며 다닐 때 이미 자신을 주인공으로 무대가 완성되지 않았겠냐”고 했다.
작가가 이 메타소설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우리 안에는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있으며 내 이상의 삶을 살고 싶다는 열정을 모두가 자기 안에서 끌어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돈키호테는 그런 의미에서 혁명적이다.
작가는 이런 깨달음을 스스로 구현해 나가고 있다. 그는 산티아고와 라만차에 이어 케냐 오지로 다음달 떠난다. 투르카냐 지역에서 98년간 선교활동을 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선교사의 자취를 밟는 여정이다.
/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