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류정일 기자] 다문화경영은 이미 기업들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는 물론, 정부 기관장으로 파란눈의 외국인들이 맹활약중이고 외국인 직원이 늘면서 영어를 병기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변화도 눈에 띈다. 사내식당은 작은 지구촌을 연상시킬 정도로 각국의 전통요리들이 제공되고 있으며 외국인 직원을 위한 커뮤니티도 활발하다.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도 다문화가정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다문화가정 자녀 지원은 교육은 물론, 심리치료에 걸쳐 다방면으로 진화중이고 결혼이주여성의 친정 방문 지원, 일자리 제공, 가정폭력 피해 여성 구제 등 세심한 분야까지 녹아들고 있다.
▶파란눈의 CEO들=반덕호, 나세일, 이참…. 익숙한 듯 낯선 이름들. 이들은 국내 기업의 CEO를 맡고 있는 외국인들이 한국 이름이다.
반덕호는 제약업체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의 더크 밴 니커크 사장의 한국 이름이다. 최근 남아공 출신인 니커크 사장의 취임 1주년을 기념해 직원들이 한국 이름을 공모했고 최종 이름을 결정했다. 반덕호 사장은 감사의 뜻으로 직원들을 자택으로 초대했으며 직원들은 이날 사장 자택 대문에 한글 이름을 새긴 문패를 달아줬다.
나세일은 에쓰오일의 CEO인 사우디아라비아 태생 나세르 알 마하셔의 한국 이름이다. 올해 초 시무식에 한복 차림으로 등장한 나세일 사장은 한국말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에쓰오일 공장이 있는 울산을 본관으로 정한 나세일 사장은 한국 이름이 적힌 명함을 지참하며 한국인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명절과 연말연시에는 전통 한복을 즐겨 입는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의 독일 이름이 베른하르트 크반트(Bernhard Quandt)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이한우라는 한국 이름을 쓰던 시절부터 대표적인 친한파로 알려진 이참 사장은 1986년 한국에 귀화했고 2009년 7월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한국 정부의 주요 기관장에 임명돼 맹활약하고 있다.
국내 20대 그룹의 외국인 임원 중 최고위직 인사로 ㈜두산의 제임스 비모스키 부회장이 꼽힌다. 1992년 맥킨지 서울 지사장으로 첫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2006년 두산에 합류한 한국통이다.
기아차 K시리즈의 성공을 이끈 피터 슈라이어는 현대차그룹 최고디자인책임자(CDO)로 있고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각 팀 백스터 부사장과 짐 클레이튼 부사장을 승진시켰다.
SK그룹에는 SK바이오팜의 크리스토퍼 갤런과 SK차이나의 쑨쯔창 등 2명의 외국인 CEO가 있으며 한화케미칼에는 폴 콜만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재임중이다.
▶사내식당에는 ‘신성한’ 닭고기 요리가=삼성전자는 국내외 임직원간의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해 직원 간에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 한글과 영어를 병기토록 하고 있다.
한글로 먼저 적고, 그 뒤에 영어로 적는 식으로 삼성전자는 자동번역 프로그램까지 개발했다. 또 직원들이 사용하는 사내 메신저에도 번역 기능을 넣었다. 한국어로 메시지를 작성해 보내면 자동으로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바꿔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국내 사업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만 1000명이 넘는 가운데 외국인 직원들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통해 업무 효율을 높이고 일체감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엔지니어링 사내식당에는 ‘신성한’ 닭고기 요리가 매일 제공된다. 할랄(Halal) 치킨은 무슬림 직원들을 위해 이슬람 율법이 정한 방식으로 조리된 요리로 이밖에도 사내식당에는 태국식 꿍팟커리, 스페인 빠에야 등 지구촌 음식이 넘쳐난다.
8000여명 전직원 중 20% 가까이가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전문가 집단으로 출신국만 해도 40여개국에 달하다 보니 상일동 사옥에는 무슬림 직원들을 위한 기도실도 마련돼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 4월 전계열사 HR포럼을 열고 ‘다양성 헌장’을 선포했다. 다문화가정 확산 등 여건변화에 맞춰 구성원의 다양성 존중을 명문화해 헌장을 채택한 것은 국내 주요기업 중 롯데가 처음이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판단으로 마련된 다양성 헌장을 통해 롯데는 태생이나 문화, 외형차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리더가 될 수 있는 개방적이고 공정한 조직문화를 지향한다는 전략이다.
▶다문화가정 돕기 활발=삼성전자는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올바른 성장을 돕고 있다. 2010년 문을 연 경기도 안산의 ‘We Start 글로벌 아동센터’는 아동 중심의 건강, 교육, 복지 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삼성전자는 수원과 광주사업장으로 확대 운영중이다.
또 삼성전자는 결혼이주여성들이 구미지역 아동센터의 다국어 강사로 일할 수 있도록 ‘다문화 글로벌스쿨’도 지원하며 일자리를 제공하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기프트카 시즌4 캠페인’ 협약식을 갖고 총 50대의 기프트카를 다문화가정 등에게 우선 지원해 정착을 지원키로 했다. 특히 현대차는 다문화가정 청소년의 심리상담 및 치료를 위해 3억원을 지원키로 최근 여성가족부와 협약도 체결했다.
‘다톡다톡(多talk茶talk)’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이번 사업은 사회 적응 및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이 차를 마시며 편안하게 상담할 수 있도록 상담 카페 형식으로 진행된다.
LG전자 노동조합은 명절에 결혼이주여성들이 고향에 다녀올 수 있도록 왕복 항공권을 선물하고 있다. 창원과 평택지부는 올초 각각 세가족을 선정해 고향에 가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SK텔레콤은 지난 2007년부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공동으로 ‘한마음운동회’를 열고 매년 어린이날에는 을지로 T타워의 ICT 체험관인 ‘티움’(T.um)에 다문화가정 어린이를 초청해 건강한 다문화 자녀 육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에쓰오일은 ‘다문화가정 해피투게더’ 캠페인의 일환으로 최근 가정폭력 피해 이주여성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후원금을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