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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 조동석> 공공기관을 위한 작은 변명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공기관장이 맡은 바 임무를 잘했다면 임기를 다해야 하고, 이를 뛰어넘어 연임한다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공공기관 ‘개점휴업’이라는 경영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A 공사 최초의 민간인 출신 사장이었던 B 씨. 그는 글로벌 기업 한국법인 최고경영자(CEO) 등을 역임하다 공기업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는 취임 첫해 공사가 우수한 경영실적을 올리자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라고 지시한다. 돌아오는 답은 “공사는 권한이 없습니다. 보상은 정부의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야 합니다”였다. 민간인에서 준(準)관료가 된 B 씨는 공직사회의 벽을 실감한다. 보상은 CEO의 대표적인 당근책. 하지만 정부의 그늘 아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을 보면 ‘정부는 공공기관의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공공기관의 자율적 운영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제대로 이행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죽하면 힘있는 낙하산 인사를 되레 선호할까.

공운법은 또 ‘공기업의 상임이사는 공기업의 장이 임명한다’고 적시했다. 감사는 개국공신들의 자리. 이 조항은 있으나마나다.

공공기관 수장의 임기는 3년이며, 이사와 감사의 임기는 2년이다. 임원은 1년 단위로 연임될 수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이 조항은 사문화된다.

지난 정부의 국무위원들은 대놓고 기관장 사퇴를 압박했다. 사정기관까지 동원했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보수정당은 좌파정권의 색깔을 빼야겠다는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그로부터 5년 후, 또다시 대규모 공공기관장 교체가 예고되고 있다. 때문에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넉 달이 다 돼 가는데도 공공기관들은 여전히 ‘개점휴업’이다. 국정철학을 같이하는 사람이 기관장이 돼야 한다는 방침으로, 대부분 공공기관 수장들은 남은 임기와 관계없이 좌불안석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낙하산 인사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눈 감자는 말도 아니다. 낙하산 인사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방만경영은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한다.

그러나 임명된 사장이 소신껏 경영할 수 있는 여건은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맡은 바 임무를 잘했다면 임기를 다해야 하고, 이를 뛰어넘어 연임한다는 풍토가 만들어져야 ‘경영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3년 임기의 기관장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기관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짧다고 한다. 수단도 많지 않다고 한다. 주무부처의 정책판단을 벗어나기도 힘들다. 리더십은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공기관장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시급하다. 그래야 5년마다 되풀이되는 공공기관장의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공공기관의 주인은 국민이다. 경영자는 대리인이다. 이 대리인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권력자를 위한 의사결정을 하면 공공자원의 비효율과 왜곡이 초래된다.

비싼 세금 내고 품질 낮은 공공재를 사용하는 국민이 행복할 리 없다. 사장실에 사장은 앉아 있다. 그러나 경영자는 없다. 2013년 6월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현실이다. 

dsch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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