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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스포츠 칼럼 - 김지연> 우리말로 학문하기
전 세계에는 말이 모두 몇 개일까? 100년이 지나면 이 말 가운데 과연 몇 개의 말이 살아남을까?

이런 종류의 질문은 사실, 내가 일상 속에서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제 국회에서 열린 ‘세계문자축제를 위한 간담회’에서 들어보니 이건 정말 흥미로운 주제였다.

일단, 전 세계에는 6000개가량의 말이 있는데 비관적으로 바라보면 오늘날의 언어 가운데 절반이 위험한 상태다.

정회선 교수는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모든 언어가 전면적으로 접촉하면서 경쟁 상황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언어도 생존을 위해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혼자는 힘이 약하니 소수 언어들이 연대해 생존할 수 있는 매개로 세계문자축제를 만들고, 한국에 세계문자연구소를 만들어 한국어 생존은 물론이고 학문 교류의 중심이 되자는 것이 이 간담회의 핵심이었다.

논의된 내용 가운데 ‘학문어’로 쓰이지 못한 언어는 소멸된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몽골어, 만주어처럼 학문을 위한 언어로 자리 잡지 못한 언어는 사라졌다. 반면에 수메르어, 산스크리트어, 고대그리스어, 라틴어처럼 학문어와 문학어의 단계에 올라선 언어들은 여전히 학문어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어는 어떤가? 우리의 체제가 ‘한국어로 학문하기’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진단이었다.

현재 교수들은 ‘만국공통어’인 영어에 시달리고 있단다. 수업도 영어로 해야 하고, 논문도 영어로 써야 한다. 물론 한국어 논문을 써도 되지만 영어 논문을 외국 학술지에 기고하면 교수 평가점수가 월등히 높기 때문에 교수들은 한국어 논문 여섯 편, 단행본 한 권보다는 영어 논문 한 편을 선택한다고 했다.

수업은 또 어떤가. 한국어로도 어려운 학문의 세계를 영어로 논하려니, 교수나 학생이나 진땀을 뺀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연구를 심화시켜 나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였다. 현실이 이러하면 한국어는 학문어로서의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해 결국 몽골어, 만주어처럼 사어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듣다 보니 고개가 마구 끄덕여지고 당장에라도 한국어가 어떻게 될까 봐 심장이 뛰다가 이내 갸우뚱해졌다.

요새 대학이 학문하는 곳이었나.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공장이니까 가장 막강한 스펙인 영어를 위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인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게 영어로 단련을 시켜야 출신 학생들이 취업도 잘하고, 취업률이 높아야 학교 순위도 올라갈 테니 영어 하나 선택하면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학생들 영어 스펙 올려줘야 할 교수가 영어 논문 때문에 쩔쩔맨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인기없다고 국문과를 막 폐지하고, 순수 학문 내팽개칠 땐 언제고.

그 과정을 보면서 계속 침묵한 건 누군지, 이런 상황을 내심 바라고 종용한 건 누군지…. 모르는 척하고 싶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고개를 숙여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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