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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등을 넘어 통합으로> “비오는날엔 악취 더 진동…창문도 못열고 삶도 피폐”
수도권매립지 현장 가보니…
지난 5월 31일 오전 9시께 인천시 서구 수도권매립지. 삼엄한 경비를 지나 부지로 들어서자 장대비가 쏟아진 듯 축축하게 젖은 도로가 나타났다. 화창한 날씨였던 이날 수도권 매립지에 여우비를 뿌린 것은 다름 아닌 ‘살수차’. 하루 1000대 가량의 폐기물 운반차량이 달리며 발생하는 ‘비산먼지’로 인한 주민 피해를 줄이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공사 측의 노력도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냄새까지는 막지 못했다. 폐기물 운반차량들이 드나드는 출입구인 ‘계량대’에 도착하자 조금씩 주변의 공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 불편하거나 기분이 나쁜 정도는 아니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가 옅게 퍼져왔다.

냄새의 근원은 계량대로부터 직선거리로 약 1㎞ 정도 떨어진 제2매립장. 적토가 끝없이 펼쳐진 제2매립장은 군데군데 벌겋게 녹슨 가스 포집관이 꽂혀 있어 황폐한 사막처럼 보였다. 폐기물 차량의 통행을 위한 자갈길과 빗물 배수로가 만들어낸 바둑판을 한 칸씩 지날수록 냄새는 점점 더 심해졌다.

이윽고 10대 정도의 폐기물 차량들이 분주하게 쓰레기를 쏟아내고 있는 매립구역에 도착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매캐하고 매스꺼운 냄새가 코와 목으로 들어오는 순간 잔기침이 터져 나왔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냄새가 심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다가도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다.

근처에 위치한 정밀검사 하역장에서는 직접 쓰레기 봉투를 칼로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막 도착한 생활폐기물 수거차량이 쓰레기를 내려놓자 마스크로 중무장한 직원들이 다가가 봉투를 열었다. 먹다 남은 사과와 야채, 배달음식 찌꺼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매립용 폐기물에 섞여서는 안 되는 음식물 쓰레기였다.

김성웅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대외협력실 계장은 “음식물쓰레기 분리수거만 잘 돼도 악취가 줄어들 것”이라며 “현재 모든 포집관을 새것으로 교체해 악취 민원이 한두 건 밖에는 없을 정도로 주거구역에는 피해가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수도권매립지에서 직선거리로 5㎞ 안팎에 위치한 청라국제도시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전 11시께 찾은 청라국제도시에서는 별다른 악취가 나지 않았지만 주민들은 “모르는 소리 말라”고 입을 모았다.

이곳에서 3년째 거주 중이라는 주부 최모(41ㆍ여) 씨는 “오늘은 날씨가 화창해서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 편”이라면서도 “비가 왔던 지난 수요일에는 악취가 정말 심했다”며 “직접 살아보지 않고는 고충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보상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매립지 계약 연장은 결사반대”라며 “정치적으로 어떤 세력이 이기고 지고는 관심 없고, 새누리당이든 민주당이든 누구든 그저 쓰레기 매립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여기서 딱 종료만 시켜준다면 그것 이상 바랄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청라지구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차모(37ㆍ여) 씨는 매립지로 인한 도시공동화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매립지에서 발생하는 악취나 유해물질 때문에 존스홉킨스 병원이 이곳에 들어오기로 했다가 계획을 취소했다”며 “매립지 피해 때문에 아예 집을 알아보러 오는 손님조차 뚝 끊긴 상태”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모(52) 씨 역시 “내 집에서 맘대로 창문도 열지 못한 채 숨어 지내듯 하는 기분을 아느냐”며 “인천공항에서 영종대교만 건너도 악취가 풍겨온다. 한국인도 악취를 느낄 정도인데 외국인들은 어떻겠나. 매립장은 이곳 주민들의 삶도, 청라국제도시라는 이미지도 모두 파괴하고 있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슬기 기자/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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