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그 이름을 들으면 목이 멘 사람들이 많았다. 다 같이 어려웠던 시절 ‘어머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언덕이었으며, 만병통치약,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이었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도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이며, 청소년들의 행복지수 또한 최하위 수준이다. 게다가 사랑의 원천인 ‘어머니’마저도 자살하고 있는 현실은 ‘가정의 달’에 주인공이 스러지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남는다.
다시 어머니날로 돌아가자. 본래 어머니들에겐 계급이 없다. 동서고금, 재력과 학력, 지위의 높고 낮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자식사랑 온도에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평범한 나를 그렇게 위해주는 우리들의 어머니는 더욱 훌륭하다. 배고픈 시절 흰 쌀밥은 자녀를 먹이고 그녀는 보리쌀 밥을 드셨다. 자식들은 새 옷 사주시고 본인은 몸배바지 하나로 일터와 시장을 누볐다. 우리가 기뻐 웃으면 어머니는 기뻐 우셨던 그 사랑의 샘은 사막에 오아시스였다. 다시 어머니 날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여성의 사회진출이 또렷해진 이 시대에 더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피로사회, 적어도 목을 축일 수 있는 사랑의 원천이 고갈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함이다.
주부우울증 치료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최근 20~30대 주부들이 자녀와 동반 자살하는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고 하는데 객관적 증상이 불명해 확인이 쉽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우울증과 조울증 보험청구건수가 2012년 한해에만 458만건이 넘는다. 그 숫자가 매년 늘고 있으며 여성이 남성보다 2배나 많다. 일과성으로 보기엔 잠재적 환자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자녀 양육과 사회활동, 어머니와 아내, 주부이면서 며느리, 그리고 스스로 딸로서 요즘 여성도 그야말로 수퍼스타다. 이렇게 세상의 중심이 여성으로 기울다보면 남모르는 삶의 무게가 어느날 최악의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적어도 이 달에는 마음을 열고 눈높이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갖자. 어머니의 어깨를 더 가볍게 해 드리자.
이제는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처음으로 20년 이상의 황혼 이혼 비율이 신혼이혼을 넘어섰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고 모르면 배워야 한다. 사회의 세포인 가정이 무너지면 건강한 국가도 기대할 수 없다. 정치인과 법조계, 심지어 군대까지 여성의 활약상은 두드러져 이제 양성평등 주장을 무색케 한다. 또한 여성근로자들이 사회 활동을 하면서 가계지출도 80%를 여성이 주관하고 있어 경제력도 여성 파워시대다. 그렇지만 먼저 과도한 자식사랑만은 조금 내려놓으시라고 권하고 싶다. 대다수 어머니들은 아직도 자녀를 자신의 화신 또는 소유로 보는 경향이 많다. 사랑은 깊을수록 좋다지만사회의 기초단위가 가정이라고 본다면 부부간, 부자간 사랑에도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랑이 조건없고 시들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