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몇 년 사이에 세계 유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자신의 꿈을 맘껏 펼치며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조성진(19). 대체 이 소년에겐, 아니 이제 막 소년티를 벗으려는 이 젊은 피아니스트에겐 무엇이 있기에 성장의 기회가 자꾸 찾아오는 것일까.
지난 11일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이젠 청년 피아니스트가 된 조성진을 만났다.
통통하던 그 얼굴은 몇 개월 새 어디로 가고 살이 빠진 갸름한 얼굴이다. 그래도 앳된 모습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 아직은 성인식이 1년은 남았구나, 하는 얼굴이다.
프랑스 파리국립음악원에서 지난해 9월부터 수학중인 그는 방학을 맞아 잠시 한국에 돌아왔다. “서울 와서 제일 맛있게 먹은 음식이 자장면이었다”며 “MSG가 그리웠다”는 그의 말에서 힘든 타국에서의 삶이 어렴풋이 전해졌다.
힘든 프랑스 유학을 선택한 건 모두 스스로의 의지였다. 다들 독일이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데 그는 여러 예술을 접하고 싶어 파리행을 선택했다.
“사실 선택지는 많았어도 일단 유럽을 가보고 싶었어요. 피아노 스킬이 아니라 유럽음악을 배우고 싶었죠. 파리는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 무용 등이 연결되는 곳이잖아요. 직접적인 영향이 아니라도 느끼고 싶었어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유학을 준비하느라 해프닝도 있었다. 입학시험 이틀전 파리에 도착해서 시험을 봤는데 1차 시험이 음을 듣고 받아적는 시험(시창청음)인 줄 알았다가 자유곡으로 피아노를 치게 된 것. 인터넷으로 확인한 정보는 지난해 정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정장에 구두를 신고 갔는데 전 회색바지에 목티를 입고 피아노를 치러 갔어요. 정말 당황했죠.”
재능 덕택인지 그래도 합격, 프랑스 유학 생활은 이제 많이 적응했다. 좋은 연주도 맘껏 보러다니고 폴리니, 소콜로프, 짐머만 등의 연주도 봤다. 오케스트라 연주도 좋아해 최근엔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는 로열 콘세르트 헤보우의 연주가 가장 인상깊었단다.
그런 그가 오는 다음달 22일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으로 한 무대에 선다.
실은 로린 마젤과의 인연은 2009년부터다. 워싱턴의 한식 알리기 행사에서 우연히 연주한 조성진을 본 마젤이 그를 두 달 뒤 그가 페스티벌에 초청했고 그 이후로 4년 만의 만남이다.
“마젤은 카리스마가 있죠. 말할 것도 없는 거장입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미하일 플레트뇨프, 마렉 야노프스키, 정명훈 등 유난히 거장 지휘자들과의 인연이 많았던 그는 “정말 행운인 것 같다”며 “항상 작은 연주나 큰 연주나 똑같이 준비하고 언제 기회가 올 지 모르니 최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은 그가 좋아하는 곡 중 하나.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개 중 가장 특별하게 느껴지고 어떻게 보면 가장 베토벤적이지 않을 수 있어요. 5번에 비해 약간 분위기가 여성스럽고요. 베토벤 자체는 여성스러움과는 멀죠. 분위기는 여성스럽되 곡이 갖고 있는 본질은 베토벤의 열정이나 혁신같은, 뭔가 운명과 맞서는 느낌이 들거든요. 제일 어렵지만 특별하기 때문에 좋아해요.”
이번공연에선 2악장이 가장 슬프고 아름답다며 베토벤만의 사운드를 찾겠다고 다짐한다.
외롭지 말라고 시작한 피아노. 진로를 고민하다 바이올린보다 앉아서 오래 칠 수 있어 피아노를 선택했다는 6살 어린이가 이젠 약관의 나이를 앞둔 차세대 피아노 연주자로 성장해 있다. 거장들이 함께 연주할 피아니스트로 선택한 조성진은 자신은 “천재나 신동이 아니다”라며 겸손함과 차분함에 재능까지 갖춘 청년이다. 또래와 달리 김광석을 좋아한다니 남다르긴 하다.
로린 마젤과 뮌헨 필하모닉의 공연은 다음달 21일과 22일 예술의전당에서, 조성진의 무대는 22일이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