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한영애는 팬들에게 바람 같은 존재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독특한 목소리로 오래전부터 전설적인 존재였던 그는 늘 보헤미안처럼 떠돌았다. 그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 팬들은 오래된 앨범들을 반복해 듣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곤 했다. 그랬던 한영애가 지난해 ‘일밤-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출연해 대중과 소통을 시작하자 대중은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 한영애는 올해 첫 소통 행보로 소극장 공연을 선택했다. 무대 위에서 객석으로 내민 한영애의 손길은 다소 수줍었다. 팬들은 반갑게 그 손을 맞잡았다. 그러나 노래하는 모습은 ‘마녀’라는 별명 그대로였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3일 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시어터에서 ‘원트 유(Want You)’란 타이틀로 한영애의 단독 콘서트가 열렸다. 한영애는 사전에 온라인 이벤트를 열어 동료 가수와 팬들로부터 신청곡을 받았다. ‘당신을 원한다’는 의미를 가진 공연 타이틀다운 이벤트였다.
흰색 의상을 여러 벌 겹쳐 입은 보헤미안 스타일로 무대에 등장한 한영애는 담백하게 편곡한 ‘여울목’, ‘상사꽃’, ‘비애’로 차분하게 공연의 문을 열었다. 한영애는 “지난해 ‘나가수’ 출연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얻었다”며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해 객석의 환호성을 받았다.
이어진 무대는 ‘나가수’ 스페셜이었다. 한영애는 ‘나가수’ 첫 번째 무대에서 선보였던 손시향의 ‘이별의 종착역’을 시작으로 ‘건널 수 없는 강’,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강산에의 ‘라구요’, 보니 엠(Boney M)의 ‘써니(Sunny)’, ‘나가수’ 고별가수전에서 1위의 영예를 안겼던 들국화의 ‘사랑한 후에’까지 쉴 새 없이 폭발적인 무대를 펼쳤다. 텔레비전으로 만난 무대가 눈앞에서 펼쳐지자 객석은 열광했다. 한영애는 “음악 민주주의에 따라 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선곡했다”고 너스레를 떨어 객석을 폭소케 만들었다.
몽환적인 편곡과 남성 무용수 2명을 앞세운 장기하와 얼굴들의 ‘달이 차오른다’는 이번 공연의 압권이었다. 유쾌한 원곡을 재해석해 전위적으로 연출한 ‘달이 차오른다’ 무대에 관객은 긴장감으로 숨을 죽였다. 짙게 깔린 긴장감을 풀어준 곡은 파격 선곡한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였다. 밝은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함께 무대 위로 수많은 풍선들이 쏟아졌다. 한영애와 관객들은 쏟아진 풍선을 서로에게 던지고 놀며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무는 흥겨운 난장을 벌였다. 최고의 히트곡 ‘누구 없소’와 ‘코뿔소’는 엉덩이 무거운 관객들마저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이었다.
밥 딜런의 ‘녹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를 마지막으로 무대 뒤로 물러났던 한영애는 연이은 앙코르 요청에 못 이겨 ‘루씰’, ‘조율’을 부른 뒤에야 작별인사를 마칠 수 있었다. 한영애는 “자주 만나며 살자”는 말을 마지막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나가수’의 영향인 듯, 공연장엔 나이 지긋한 관객뿐만 아니라 젊은 관객들의 모습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한영애는 얼마 전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많은 페스티벌에 참여할 생각”이라며 “특히 대학 축제 무대에 많이 오르고 싶다”고 바람을 전한 바 있다. 다음 공연의 관객 평균 나이는 더욱 젊어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같은 한영애의 행보는 기성 가수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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